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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옷자락 잡을 마지막 기회'... 지금, 북극바다는 뜨겁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8.20 18:16

수정 2025.08.20 19:26

북극항로 1991년에 첫 개방
물류비 절감·안전 운항 장점
석유·가스·수산자원 등 풍부
항로 개척·자원 개발 경쟁적
韓 미래성장동력으로 충분
선박확보·법률정비 나서야
이재명 정부에서 가장 큰 화두가 인공지능이라면 그다음은 북극항로다. 온난화는 인류에게 기후재앙을 안기면서도 북극 바닷길을 여는 역설적 혜택을 줬다. 주요국들이 북극과 북극항로 개발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어 차가운 북극 바다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어물어물하다가는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신의 옷자락'을 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한 김태유 교수의 말이 과장이 아니다.



북극항로는 옛 소련의 붕괴기인 1991년 7월 개방됐다. 북극항로는 시베리아 북부 해안을 따라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북동항로와 캐나다 북부 해역을 따라 두 바다를 잇는 북서항로로 나뉜다. 먼저 북서항로 개척에 여러 탐험가들이 도전했지만 얼어붙은 바다는 그들의 무덤이 되었다. 처음으로 북서항로를 뚫은 인물은 노르웨이 탐험가 로알 아문센으로 1905년의 일이다.

북동항로는 일반적으로 북극항로로 불린다. 부산항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항까지 간다고 할 때, 북극항로는 수에즈 항로와 비교하면 운항 거리로 약 7000㎞, 운항 일수로 약 10일 단축된다. 물류비용 등이 그만큼 절약된다. 더욱이 수에즈 항로는 홍해 지역의 후티 반군과 해적의 공격에 노출되어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도 하다. 북극해 대륙붕에는 세계 미발견 석유의 13%, 가스의 30%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북극해와 북태평양 인근 어장의 연간 총어획량은 전 세계 어획량의 40%나 될 정도로 많다. 액화천연가스(LNG) 등 북극의 자원 개발은 러시아와 미국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 러시아, 중국, 프랑스 등이 공동 투자한 야말프로젝트도 그중 하나다. 덴마크령 그린란드는 희토류 등 엄청난 자원이 매장된 보물 같은 땅이다. 현 트럼프 대통령까지 미국의 그린란드 매입 시도는 1868년부터 5번 이상 있었다. 트루먼 대통령 때는 1억달러어치의 금괴를 주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북극 공동 개발과 관리를 위한 국제기구로 북극이사회(Arctic Counsil)가 구성돼 있다. 북극에 인접한 러시아, 미국, 캐나다, 노르웨이, 스웨덴 등 여덟 나라가 회원국이다. 우리나라는 2013년 옵서버 국가로 가입했고 일본, 중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도 같은 자격이다. 회원국들을 중심으로 한 개발 경쟁은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미국은 알래스카 북부에서 생산한 LNG를 1300㎞ 남쪽으로 수송해 연간 2000만t을 수출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 사업에 한국과 일본이 참여하기를 원한다. 미국은 지난해 북극을 자원과 교통의 의미를 넘어 새로운 안보 프런티어로 명시했다. 그러나 선령 40년이 넘는 낡은 쇄빙선 한 척만을 가진 미국은 항로 개척에서는 상대적으로 추진력이 약하다. 미국이 한국과 조선업 협력을 원하는 이유 중 하나다. 한화오션이 최근 미국 필리조선소를 인수했는데 쇄빙선 건조에서도 한미 양국이 협력할 수 있다.

유일한 핵추진 쇄빙선 선대(7척)를 포함, 전 세계 쇄빙선의 90%인 57척을 보유한 러시아는 2030년까지 북극해 물동량 1억5000만t 이상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북동항로의 거의 모든 유역을 자신의 영해나 배타적경제수역 안에 둔 러시아는 항로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려 한다. 중국은 북극을 일대일로(一帶一路)의 확장판, 빙상 실크로드로 삼고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컨테이너 운송을 시작했고 5척의 쇄빙선을 앞세워 2027년에는 연중 운항을 개시한다. 일본은 북극 LNG-2 프로젝트에 참여해 야말반도에서 생산된 LNG를 2020년부터 본국으로 실어 나르고 있다.

북극은 자원 개발과 물류 혁신 측면에서 우리에게도 미래의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 부산항은 북극항로를 이용하는 선박들의 거점항구로서 최적의 위치다. 그러나 역대 정부들은 북극항로 정책을 잠시 시도하다 뒷전으로 물림으로써 우리는 경쟁에서 뒤처져 있다. 해운업계의 관심도 아직은 낮다. 연중 정기운항이 어렵고 중간 기착지가 없으며 기상 정보도 부족하다는 이유다. 빙하 충돌 위험성으로 러시아의 콘보이(호송)를 받아야 하는 문제도 있다.

우리나라는 2013년에 현대글로비스가 러시아 우스트루가항에서 광양항까지 시범 운항을 했다. 이후 몇 번 더 북극항로를 시범운항한 적이 있다. 새 정부는 다시 북극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항로 개척과 쇄빙선 건조를 추진하고 있다. 2030년부터 북극항로를 상용화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아라온호보다 두배 큰 차세대 쇄빙연구선을 건조할 계획이다. 15척을 수주한 실적이 있는 쇄빙선 건조는 조선업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정부가 해양수산부를 부산으로 이전하려는 것도 북극항로 개척이 주요 목적이다.

그러나 난관은 높고 과제는 많다.
북극항로 전용 선박을 확보해야 하며 해빙 예측 기술과 같은 지식과 정보도 습득해야 한다. 관련 법률과 제도도 정비해야 한다.
정부와 거점항구로 육성할 부산과 울산, 여수, 포항 등 지자체, 한국해양진흥공사, 북극항로협회, 해운협회 등 민관의 긴밀한 협력은 강조할 필요도 없다.

손성진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