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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헌법수호’ 특별정신교육 "軍기강 와해 전투력 훼손 우려"

이종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8.21 16:26

수정 2025.08.21 16:26

유용원 "軍 '항명죄 성립 않는 사례' 교육…안보위협 자해행위"
"교안에 '음주제한 명령 등 어겨도 항명죄 불성립'…전면 재검토 필요"
항명죄 사례, 수갑 찬 군인 이미지 사용 등 교육내용과 대상 등 재검토 필요
육군은 '25년 UFS/TIGER의 일환으로 20일, 울산항 5부두 일대에서 '울산항 통합방호훈련'을 실시했다. 이번 훈련은 민·관·군·경·소방 등 통합방위요소 간의 유기적인 협조체계 강화와 국가중요시설 방호능력 향상을 위해 계획되었다. 사진은 53사단 장병들이 20mm 발칸포를 활용해 군집드론 공격에 대응하는 모습. 육군 제공
육군은 '25년 UFS/TIGER의 일환으로 20일, 울산항 5부두 일대에서 '울산항 통합방호훈련'을 실시했다. 이번 훈련은 민·관·군·경·소방 등 통합방위요소 간의 유기적인 협조체계 강화와 국가중요시설 방호능력 향상을 위해 계획되었다. 사진은 53사단 장병들이 20mm 발칸포를 활용해 군집드론 공격에 대응하는 모습. 육군 제공

[파이낸셜뉴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군의 정치적 중립성과 헌법 질서를 강조하기 위한 취지로 마련된 '민주주의와 헌법수호' 특별정신교육 의무화 표준교안이 오히려 군 기강과 전투력을 저해할 수 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21일 군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8일, 전국 모든 부대와 교육기관 장병, 군무원들을 대상으로 하달된 해당 교안의 구성과 표현 방식, 교육대상 및 교관 편성 등 적절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국민의힘 유용원 의원도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원실이 입수한 국방부의 '민주주의와 헌법, 그리고 군(軍)' 정신교육 교안을 공개했다.

■항명죄 사례교육의 문제점
유 의원실에서 입수한 이번 특별정신교육 교안에는 항명죄 성립 여부와 관련 판례를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특히, ‘상관의 지각금지 명령’ ‘중대장의 숙소 환기 명령’ ‘해안경계 부대 소초장의 음주 제한 명령’ 등 불이행하더라도 항명죄가 성립하지 않은 판례가 나열돼 있다.



이러한 내용은 병사들로 하여금 ‘상관의 일상적 지시마저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다. 상관의 명령에 대한 적법성 여부를 먼저 따지는 병영 분위기가 조성되면 북한의 도발 등 위급한 작전 상황에서 지휘·복종 관계가 흔들리고 즉각적인 전투력 발휘가 지연될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다.

군인복무기본법 제25조는 ‘군인은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군에서 상명하복은 군의 존재 이유이자 핵심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교육은 그 근간을 흔드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언급된 사례는 군사법원에서 확정된 판례를 토대로 항명죄에 해당하는 사례와 함께 나열된 '항명죄 관련 판례'의 일부분으로, 군형법상 항명죄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지 처벌받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해당 사례들도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 관련 법규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교안 내 부적절한 이미지 활용, 교육대상 및 교관 편성 부적절
교육자료 내에는 군복을 입은 군인이 마치 수갑을 찬 듯한 모습을 연상시키는 이미지가 삽입되어 있다. 이 장면은 장병들의 자긍심을 높이기는커녕, 불필요한 낙인과 사기 저하를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군 스스로 모욕을 자처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전 장병과 군무원, 심지어는 신병과 간부 후보생 등이 일괄적으로 교육대상에 포함된 것도 부적절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명령의 적법성과 정당성을 판단해야 할 1차적 책임은 명령을 내리는 지휘관에게 있다. 따라서 이번 특별정신교육은 우선적으로 장성단과 장교단 등 지휘관 계층에게 선행되었어야 한다. 지휘 책임과 복종 의무를 구분하지 못한 채 병사 등 전 장병에게 동일한 교안을 적용한 것은 군 기강을 뒤흔드는 잘못된 접근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헌법 체계와 법률 전문성이 부족한 각군 정훈 계통에 교안을 일괄 하달하고, 세부 교육계획 수립과 교관임무, 교육감독 등의 역할까지 맡긴 것은 군의 정신교육 취지와 크게 어긋난다. 관련 지식이 전무한 정훈장교들이 이번 교육을 주도하게 되면 잘못 설계된 교육 메시지가 장병들에게 오염된 방식으로 전달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유 의원은 “항명죄 사례를 판례 중심으로 교육하는 방식은 자칫 장병들로 하여금 지휘·복종 관계를 협소하게 해석하게 만들 위험이 있으며, 작전 현장에서 명령 수행의 신속성과 효율성이 저해돼 전투력 발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 의원은 지난 18일 한미연합연습 UFS 1일차 국방전략회의에서 안규백 국방장관이 장병들에게 ‘즉시 행동화할 수 있는 전쟁수행 능력 구비’를 당부한 것을 상기시키며, “장관의 당부 사항은 지휘관의 명령에 망설임 없이 반응해야 가능한데, 이번 교육자료는 오히려 장관의 당부와 배치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유 의원은 “군의 정신교육이 군 기강과 전투력을 갉아먹는 방식으로 추진된다면, 그것은 교육이 아니라 안보를 위협하는 자해적 처사에 불과하다”며 “국방부는 이번 특별정신교육의 교안, 교육대상, 교관 편성 등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국방부는 "관련 자료는 의견 수렴 및 교육 준비 중인 자료로, 다양한 의견을 참고해 보완한 후 장병교육에 활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민주주의와 헌법수호’ 특별정신교육 표준 교안 일부. 국민의힘 유용원 의원실 제공
'민주주의와 헌법수호’ 특별정신교육 표준 교안 일부. 국민의힘 유용원 의원실 제공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