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시위 늘면 경찰 부담도 상승
모호한 ‘사용자 범위’는 뇌관
모호한 ‘사용자 범위’는 뇌관
[파이낸셜뉴스] 6개월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2월부터 시행되는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현장과 법정 모두에 적지 않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쟁의 대상이 확대되고 손해배상 청구가 제한되면 파업·집회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반면, 경찰의 대응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법조계에서는 사용자 범위와 손해배상 기준의 불명확성 때문에 소송 폭증과 위헌 논란이 잇따를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노조 권리 강화로 집회·시위가 늘 수밖에 없다”면서 “법적 모호성이 커 결국 법정 다툼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집회·시위 늘면 경찰 부담도 상승
26일 정치권과 법조계에 따르면 노봉법은 하도급 노동자에 대한 원청 책임을 강화하고, 쟁의행위 범위를 확대하며,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것이 핵심이다. 협상 대상은 늘어나고 부담이 줄어든 만큼 노조 입장에선 집회·시위를 더욱 활발하게 진행할 수 있다.
문제는 경찰 부담도 덩달아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통상 대규모 집회나 시위 현장에는 경찰 기동대가 투입돼 질서를 유지하고 충돌을 방지하는 역할 등을 맡는다. 과거에는 의무경찰(의경)이 경찰 기동대와 함께 집회 관리 등 다수의 치안 현장을 지원했지만, 2023년 의경 제도가 폐지되면서 직업 경찰관들로만 구성·운영되고 있다. 현재 전체 경찰 기동대 수는 1만2000여명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집회·시위는 여전하다. 매년 정기적으로 열리는 행사 외에 정치적 이슈, 단발성 투쟁 등이 수시로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열린다. 실제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21년부터 경찰력이 동원된 집회·시위 건수는 매년 1만건을 웃돌았다. 2021년 1만300건, 2022년 1만293건, 2023년 1만431건, 2024년 1만287건 등을 기록했다. 특히 올해는 탄핵 정국으로 전국에서 대규모 집회·시위가 잇따르며 경찰 기동대의 피로도 상승 문제가 공론화됐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노봉법은 지켜봐야 할 사안이지만, 노조 권리가 강화된 만큼 집회·시위가 늘어날 가능성은 있다"며 "현장에 공권력이 투입되고 집회 과정에서 파생되는 각종 사건·사고가 겹칠 경우 경찰 기동대의 피로도와 업무 강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경찰은 집회·시위가 늘어나더라도 기존 원칙에 따라 관리하겠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노봉법으로 집회와 시위가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새롭게 달라질 것은 없다"며 "헌법상으로 보장된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신고된 집회는 집회대로 보장하고, 쟁의행위는 쟁의행위대로 보장·관리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모호한 ‘사용자 범위’는 뇌관
법조계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법 조항이 모호한 부분이 있는 만큼, 결국 법정 다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예상돼서다.
가장 큰 쟁점으로는 '사용자 범위'가 꼽힌다. 개정안은 사용자의 범위를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확대했다. 여기서 '실질적 지배력'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두고 혼선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자동차·조선·철강 등 제조업은 수백개의 협력업체가 관여하기 때문에 줄소송이 이어질 수 있다. 사용자로서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을 경우, 부당노동행위 구제 신청이나 단체교섭 응낙 가처분 신청 등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사용자는 부당노동행위로 형사처벌 대상이 되기도 한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개정안은 묵시적 근로계약 당사자로 볼 수 없는 경우에도 사용자로 해석이 가능하도록 범위를 무한 확장해 놨다"며 "처벌을 위한 전제 조건인 사용자가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은 것은 죄형법정주의에도 위배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찬근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법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분쟁으로 이어져 법원 판단에 의해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며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에서 보다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지침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봉법이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게 될 가능성도 있다. 국민의힘과 경제단체는 노봉법 통과 후 헌법소원 등도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릴 경우 해당 법률 조항은 효력을 상실한다. 헌법불합치라면 또다시 공은 국회로 넘어가 법을 개정해야 하기 때문에 사용자와 근로자 모두 혼란이 길어질 수 있다.
jisseo@fnnews.com 서민지 장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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