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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호의 경제산책] 규제와 선택의 자유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8.26 18:16

수정 2025.08.26 18:27

정치권과 일부 관료 판단에
선택의 자유 과도하게 제한
시장경제 장점 살리지 못해
유일호 前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유일호 前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자전거를 탈 때 꼭 헬멧을 착용해야 할까? 아마도 안전이 중요하니까 꼭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대답이 제일 먼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우리나라처럼 법률로 헬멧 착용이 의무화되어 있는 경우는 드물고 단지 권고사항으로만 되어 있다. 왜 그런가.

곰곰 생각해 보면 안전이 우선이라는 자명해 보이는 대답이 반드시 옳은가 하는 의문이 들게 된다. 우선 개인의 안전은 본인이 알아서 책임질 텐데 굳이 사회 전체(국가)가 나서야 할 이유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자동차 안전벨트 착용의 예를 들어 그러한 강제가 필요하다는 답이 있을 수 있다.

좀 더 이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개인은 자신의 위험성을 객관적 사실보다는 과소평가하기 때문에(이른바 근시안적), 위험의 심각성을 더 잘 아는 사회 전체가 개입하여야 된다는 온정주의(또는 가부장적 보호주의·paternalism)에 입각한 주장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안전에 대한 인식이 확고하겠지만 일부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존재할 것이다. 따라서 이 주장이 아주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닌데 그렇다면 비만, 흡연 등도 개인이 간과하기 쉬운 또 다른 안전의 문제인데 왜 국가가 개입하지 않을까.

이 경우 경제학에서는 외부효과로 설명하기도 한다. 즉 헬멧 착용을 하지 않으면 사고의 심각성이 더해지기 때문에 의료비가 증가하고, 이는 전체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시키므로(사회 전체의 부담을 증가시키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자동차 안전띠, 오토바이 헬멧 착용의 강제도 같은 논리에 입각한다 할 수 있다. 다만 자전거의 경우 헬멧 착용이 가져오는 사회적 부담 감소와 착용이 가져오는 개인적 부담 증대 중 어느 것이 더 큰지는 확실치 않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자전거 헬멧 착용은 법적으로 의무화되어 있기는 하지만 벌칙이 따르지 않기 때문에 강제라기보다는 권고조치라고 보아야 한다. 결국 이는 많은 선진국에서 채택하고 있는 제도와 다르지 않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자전거 헬멧 착용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예를 살펴보았지만,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안전에 관한 규제들도 깊이 생각하다 보면 개인 선택의 자유제한과 사회적 비용 감소를 포함한 전체의 이익증진 사이의 선택의 문제로 귀결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사회 전체의 입장에서 개인의 행위를 제한하는 데 있어서는 그 사안에 따라 여러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다. 예를 들어 극단적 자유주의자 중에는 마약도 개인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각자가 마약이 끼치는 해악을 스스로 잘 알 것이라는 이유 때문인데, 아마 일부 선진국에서 중독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알려진 마약을 합법화하는 근거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부이지만 마약이 가져오는 치명적 문제점을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며, 따라서 마약사용 금지라는 행위제한은 당위성을 갖는다.

분명한 것은 사회가 개인의 판단에 우선하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 정당화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치 독일이나 구소련의 경우 흔히 볼 수 있었듯이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명분하에 특정 집단의 판단을 우선하게 되면 사회 전체에 오히려 큰 해악을 끼칠 수 있다.

경제적 함의가 큰 규제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외부효과 등 사회 전체에 미치는 경제적 비용이 큰 경우, 또는 개인의 근시안적 행위가 뚜렷한 경우 이러한 규제 또는 행위제한은 정당화될 것이다. 환경관련 규제들이 이런 예가 된다.
반면 이와 같은 근거도 갖춰지지 않았는데 정치권이나 일부 관료집단의 판단에만 의존해 도입되는 규제도 많다. 이는 경제적 선택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며, 나아가 시장경제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게 되므로 지양되어야 한다.
경제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합리적 판단에 근거할 때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유일호 前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