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증시는 기대감을 먹고 자란다

박지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8.26 18:19

수정 2025.08.26 18:25

박지연 증권부 기자
박지연 증권부 기자
"시장은 기대감으로 움직인다."

지난달 말 세제 개편안 발표 이후 증시 흐름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한 업계 관계자가 꺼낸 답이다. 그는 세제 개편안 발표 직전까지 코스피가 연초 대비 30% 넘게 오른 것은 순전히 정책 기대감 때문이었다며, 이 기대감이 꺾였으니 지수가 빠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 말은 현 시장의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투자자들이 바랐던 것은 대주주가 세 부담 때문에 증시를 억누를 일이 없는, 과세체계 개편을 기반으로 둔 진정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였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안은 정반대였다. 대주주 양도세 기준은 윤석열 정부 이전인 '10억원'으로 강화했고, 배당 분리과세 최고세율도 당초 논의됐던 이소영 민주당 의원안의 25%가 아닌 35%로 확정됐다. 시장 기대치에는 한참 못 미치는 결과였다. 세제 개편안 발표 후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매기는 게 당연하다"는 논리도 다시 등장했다. 투자자 사이에선 세법이 또다시 정치논리에 휘둘리고 있다며 '그럴 줄 알았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문제는 단순히 세율 숫자가 아니다. 증시를 흔드는 건 '큰손' 투자자들의 매물이 아니라 '정부가 주식시장에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신호 그 자체다. 대주주 양도세 기준에 대한 반발이 거세자 정부는 해당 내용만 추가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투자자들은 대주주 기준 최종안이 언제 나올지 모르는 불확실성에 다시금 갇히게 됐다. 외국인 투자자들 역시 이러한 오락가락 정책 기조를 보며 시장의 신뢰성을 의심한다. 결국 신뢰를 잃은 시장은 불확실성이 커지고, 투자자들은 국내보다 더 안정적인 투자처를 찾게 된다.

배당소득 분리과세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배당 확대를 유도하겠다고 강조했지만, 시장이 기대했던 수준보다 높게 설정된 세율은 투자심리를 오히려 위축시켰다. 배당 분리과세 자체는 시행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기대감을 키워놓고 이를 충족하지 못한 정책은 그 효과보다 실망이 더 크게 돌아온다. 국내 주식시장을 움직이는 힘은 결국 숫자가 아니라 '기대감'이라는 점을 정부가 간과한 셈이다.


정부는 자본시장 선진화를 강조하지만, 진정한 증시 활성화는 투자자 심리를 세심하게 읽고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갖춘 정책을 내놓을 때 가능하다. 시장은 기대감으로 움직이지만, 그 기대를 저버리는 순간 시장은 다시금 얼어붙을 것이다.
지금 필요한 건 시장과의 약속을 지키는 일관성이다.

nodelay@fnnews.com 박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