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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직장 실망감에 노동시장 복귀 주저…청년이 바라는 건 상식적 일터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8.27 09:55

수정 2025.08.27 09:55

첫 직장 실망감에 노동시장 복귀 주저…청년이 바라는 건 상식적 일터


서울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뒤 세 곳의 직장 경력을 쌓고 최근 회사를 그만둔 이모(31)씨는 당분간 프리랜서 전향을 준비하며 휴식을 갖기로 했다. 그는 “처음엔 더 좋은 회사로 옮기면 근무 환경이 나아질 거라 기대했지만 이직을 반복할수록 오히려 악화됐다”며 “이젠 직장에서 기대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현재 전국의 ‘쉬었음 청년’은 약 40만 명에 달하며, 이 중 73.6%가 한 번 이상 직장 경험이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이 일터를 떠난 가장 큰 이유는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흔히 “청년들의 눈높이가 높다”는 비판이 나오지만, 실제 이들이 바라는 것은 고연봉·대기업식 복지가 아니라 최소한의 상식이 통하는 근로 환경이었다.



“최소한의 상식”을 원하는 청년들
대학내일이 고용노동부 지원으로 실시한 실태조사에서 청년들이 꼽은 직장의 최소 조건은 ‘청결한 화장실’이 1위였다. 이어 사내 식당·카페, 냉난방, 휴게실 등이 뒤를 이었다. 한 청년은 “청소가 제대로 되지 않는 공용 화장실 때문에 방광염에 걸린 적도 있다”며 “생리 기간에는 특히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청년은 “야근이 싫은 게 아니라 불필요한 야근이 문제”라며 “성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관행적 야근’에 보상조차 없는 현실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조사에서 확인된 청년들의 수용 가능한 기준은 ▲연봉 2,823만 원 ▲편도 통근 시간 63분 이내 ▲주 3.14회 이하 추가 근무였다. 그러나 수치보다 더 강조된 것은 “매일 지속할 수 있는 기본적 환경”이었다.

직장 경험자일수록 노동시장 복귀 주저
전체 쉬었음 청년 중 직장 경험이 있는 이들이 73.6%에 이른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과거 직장에서 부정적 경험을 겪은 청년일수록 “다시 돌아가도 비슷한 일을 겪을 것”이라는 불안 때문에 구직 시도 자체를 주저하는 경우가 많았다. 청년단체 <니트생활자> 관계자는 “일자리를 못 구하는 게 아니라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게 더 큰 문제”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상사의 폭언, 병가조차 눈치를 봐야 하는 문화, 인사관리 부재가 여전히 청년들의 직장 회피 요인으로 꼽힌다. 이는 청년들이 단순히 취업을 미루는 것이 아니라, 첫 직장에서의 실망감이 반복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노동시장에서 이탈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첫 직장 실망감에 노동시장 복귀 주저…청년이 바라는 건 상식적 일터


기업의 눈높이도 문제
한편 기업 입장에서는 “적합한 인재가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람인 HR연구소에 따르면 2023년 기업 10곳 중 8곳은 계획만큼 인원을 충원하지 못했으며, 이유의 절반 이상이 ‘지원자 중 적합 인원 부족’이었다. 그러나 청년들은 “기업이 요구하는 스펙이 지나치게 높다”며 오히려 기업의 눈높이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정책 방향, “일자리의 하한선 보장해야”
그동안 청년 고용 정책은 일자리 수 확대에 방점을 찍어왔다.
그러나 많은 쉬었음 청년은 ‘일 경험 부족’이 아니라 ‘이전 직장에서의 실망감’ 때문에 복귀를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단기 채용 지원금보다 장기 근속이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윤동열 건국대 교수는 “일자리의 하한선은 단순한 임금 수준이 아니라 안전한 근로 환경, 합리적 근로 시간, 기본적 복지제도, 성장 가능성을 포함한다”며 “청년이 ‘버티는 일자리’가 아닌, 매일 지속할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을 제도화하는 것이 노동시장 복귀의 열쇠”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