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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 세 모녀' 비극, 이젠 끝낼 수 있을까

정상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8.27 15:55

수정 2025.08.27 15:52

복지부, 논란 많은 부양의무 기준 폐지·완화
AI 활용, 사각지대 찾는 혁신 로드맵 마련 중
'무늬만 수급자'도덕적해이 감독도 강화해야
지난 2024년 2월 시민단체들이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촘촘한 사회안전망 구축"을 요구하며 '송파 세 모녀' 10주기 추모제를 지내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2024년 2월 시민단체들이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촘촘한 사회안전망 구축"을 요구하며 '송파 세 모녀' 10주기 추모제를 지내는 모습. 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지난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의 한 단독주택 지하 1층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다 지친 60대 어머니와 30대 두 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은 "죄송하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을 내고 간다"는 유서 쪽지를 남겼다.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방치된 이들의 죽음에 온 국민은 공분했고 슬퍼했다. 이후 정부가 여러 대책을 내놓고 취약계층을 찾아 지원했으나 규제·제도 등의 이유로 근본적인 해법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의 화려한 겉모습에 이들의 죽음도 쉽게 잊혔고, 유사한 사건은 끊이질 않고 있다. 최근엔 전북 익산에서 매달 200만원이 넘는 병원비를 감당할 길이 없었던 모녀가 기초생활수급을 받지 못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빈곤층 족쇄' 부양기준 폐지키로

27일 정부가 260만명에 이르는 기초생활수급자의 생계·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을 단계적으로 폐지키로 한 것도 이런 의미에서 찾을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가장 실질적인 생계와 의료급여의 부양의무자 기준을 향후 5년 내 폐지·완화한다. 의료급여의 경우, 현재는 중증장애인 가구를 제외하고 부양의무 기준이 적용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현재 150만여명이 의료급여를 받고 있다.

이에 더해 복지부는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생계·의료급여 최대 보장 수준을 중위소득(국민 소득의 중간값)기준 현행 32%에서 2030년까지 35%로 단계적으로 높일 계획이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은 "정부는 빈곤층의 삶을 보듬고 국민 모두가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안심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빈틈없이 촘촘히 살피겠다"고 했다.

부양 의무자 기준은 가족과 연락이 끊겼거나 가족도 부양할 능력이 없는 현실에서는 족쇄와 같은 제도였다. 생계와 의료급여 지원을 받으려면 가족관계 단절 등을 명확히 증명해야 한다. 조건을 충족해도 가족에게 수급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꺼려 신청 자체를 포기하는 일도 많다. 복지부 추산으로 부양의무자 등의 이유로 지원을 받지 못하는 빈곤층이 60만~70만명에 이른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신청주의는 매우 잔인한 제도 아닌가"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대통령은 저소득층이 복지지원 제도를 모르고 있거나 신청을 하지 않아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복지 지원금 지급 제도 개선을 지시한 바 있다. 정부의 123대 국정과제 중 하나가 '기본적 삶을 위한 안전망 강화'이다.

'무늬만' 수급자 도덕적해이 막아야

이를 위해 정부가 선택한 방법은 인공지능(AI) 활용이다. 사회취약 위기가구를 더 정밀하게 찾아내 지원하겠다는 취지로 단전·단수·통신비 연체 등의 정보에 금융·채무·의료 정보까지 확장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런 내용을 주축으로 향후 5년간의 AI 복지·돌봄 혁신 로드맵을 만드는 중이다.

그러나 지금도 빅데이터 등의 정보를 활용하고 있지만 개인정보 관리와 부처 간 연계 부족, 현장 공무원 업무 과중 등 여러 이유로 빈 틈이 많다. 복지행정 전반에 AI가 도입되는 추세는 거스를 수 없겠지만 AI 활용을 과신해 또다른 사각지대를 만들 수 있다는 우려다. 은둔·고립 위기가구를 AI가 모두 찾아내기 어렵다. 사람의 힘이 꼭 필요한 현장에는 전담 인력이 있어야 한다. 지역공동체의 관심과 참여를 독려하는 인센티브 제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다.

포용적 복지정책의 빈틈이 없도록 정부 당국의 정밀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다. '무늬만 기초생활수급자'와 같이 재산을 숨긴 채 정부의 특별 지원을 받거나 불필요한 장기 입원을 하는 등의 도덕적 해이 때문이다.

부양의무 기준 폐지·완화에 정부의 복지재정 지출도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어 재원 마련 방안도 요구된다.
올해 기초생활보장 예산은 18조6000억원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기초생활수급자의 사회 복귀와 재활, 근로 장려와 같은 '탈수급'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의 여러 지원금이 취약계층을 포용 지원하되, 근로·재활 의지를 떨어뜨리고 과의존하지 않도록 정부의 세심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