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수군의 무기 '군선'과 '총통'
지금의 군함인 고려·조선의 군선
대선·쾌선 등 종류와 쓰임 다양해
'판옥선' 임진왜란서 맹활약 펼쳐
주무기로 화약무기와 창·활 사용
한번에 15발 쏘는 총통도 만들어
지금의 군함인 고려·조선의 군선
대선·쾌선 등 종류와 쓰임 다양해
'판옥선' 임진왜란서 맹활약 펼쳐
주무기로 화약무기와 창·활 사용
한번에 15발 쏘는 총통도 만들어
고려와 조선시대의 수군에게도 현대 해군처럼 가장 중요한 무기는 군선(軍船)을 첫 번째로 손꼽을 수 있다. 본격적인 해전이 시작된 고려 말부터 조선 초기까지 일정한 규격을 갖춘 군선은 건조되지 못했으며 크기나 기능에 따라 대선, 중대선, 중선, 쾌선, 맹선 등 다양한 명칭을 불렸으며, 전선(戰船)이라고 통칭하기도 했다. 이 배들은 전투 기능뿐만 아니라 세곡을 나르는 조운선 등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됐다.
군선의 체제가 정비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 세조 때 병조선(兵漕船)이 개발되면서부터이다. 이후 배의 크기에 따라 대·중·소 맹선 체제로 이름이 바뀌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판옥선(板屋船)은 조선 중종 때 을묘왜변 이후 새롭게 개발된 군선이다. 당시 해안지역을 노략질하는 왜구에게 맞서기 위해서 크고 높은 군선의 필요성이 대두됐으며, 새롭게 개발된 판옥선은 기존 대맹선의 크기를 키우고 갑판 위에 담장 형태의 널판을 둘러 높은 위치에서 적을 내려다보며 싸울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을묘왜변을 계기로 각 수군진에 보급된 판옥선은 불과 30여년 이후 벌어진 임진왜란의 주요 해전에서 일본 수군을 무찌르는데 큰 공헌을 세웠다.
임진왜란 이후 판옥선·거북선 등 군선의 크기가 점차 커지자, 바다에 출몰하는 이양선에 빠르게 대응하는데 어려움이 생기자 작고 빠른 군선의 개발이 필요했다. 전라·충청수영에서는 판옥선 대신 방패선(防牌船)이나 해골선(海船) 등을 제작해 수군진에 배치했으며, 특히 방패선은 서해 연안을 지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수군의 첫 번째 무기가 군선이라면, 적에게 직접 타격을 가할 수 있는 공격 무기 또한 해전의 승패를 결정짓는데 중요한 요소였다. 대표적인 무기로는 원거리의 적을 강력하게 타격할 수 있는 대·소형 화약무기와 전통적인 무기인 창·활 등이 있다.
화약무기는 조선 초부터 지속적인 개발과 발전을 거듭하여 다양한 대·소형 총통이 개발되었고, 을묘왜변 이후 대형화된 판옥선과 안성맞춤으로 운영되면서 해전에서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다. 대형총통에서는 대형화살이나 크고 작은 철환(쇠공)을 발사할 수 있었다. 소형총통은 작은 쇠구슬을 한번에 15발까지 발사할 수 있어 현대의 산탄총과 비슷한 기능을 했다. 수군이 조직적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데 시각·음향 신호도 빠질 수 없다. 각 군선은 방위를 기준으로 오방색을 활용하여 위치와 소속 수군진을 표기했다. 또한 북, 징, 나발, 삼안총 등 각종 신호음에 맞춰 군선이 나아가거나 멈추고, 화포를 발사했다.
이처럼 체계적으로 운용된 수군의 무기와 신호 체계는 우리 바다에서 벌어진 수많은 해전에서 큰 승리를 이끌어낸 원동력이 됐다.
도움말=국립해양박물관 김승신 학예사
정리=bsk730@fnnews.com 권병석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