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업과 옛 신문광고

[기업과 옛 신문광고] 한국 최초의 D램 개발

손성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8.28 18:26

수정 2025.08.28 18:26

[기업과 옛 신문광고] 한국 최초의 D램 개발
금성이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만들며 한국 전자산업을 주도하는 것을 지켜본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전자 산업 진출을 선언한 것은 1969년 4월 27일이었다. 선언은 기자회견이 아니라 신문 칼럼을 활용했다. 금성의 구씨 가문과 이 회장은 사돈 관계였기에 두 가문은 불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실 삼성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없었다면 금성(현 LG전자)의 발전도 더뎠을 수 있고, 현재 세계 가전시장에서 1, 2위를 다투는 일도 없을지 모른다. 삼성은 반도체와 스마트폰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고, LG는 가전에 집중함으로써 기술력을 끌어올렸다고 할 수 있다.



삼성의 반도체 진출은 우연한 기회에 찾아왔지만 우여곡절이 많았다. 반도체가 처음 개발된 것은 1950년대인데 우리나라에서는 1965년 무렵 미국의 고미그룹이 들어와 트랜지스터를 조립·생산한 것이 시초다. 그 후 모토로라 등 다른 업체들이 들어와 국내에서 반도체를 만들었다. 1974년 우리 손으로 직접 반도체를 만들고자 한국반도체라는 기업을 차린 사람이 강기동 박사(서울대 전기공학과 53학번)다. 한국 반도체의 선구자로 불리는 그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모토로라 반도체연구소에서 생산기술부장을 지내다 귀국했다.

강 박사는 1972년 경기 부천에 반도체 소자를 생산하는 한국반도체를 설립, 이 땅에 반도체의 싹을 틔웠다. 한국반도체는 약 300명의 기술자와 기능공을 고용하고 메모리와 비메모리를 모두 제조할 능력을 갖춘, 당시 미국 반도체 업체보다도 앞선 기업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금세 자금난에 빠지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들은 이건희 동양방송 이사가 인수에 나섰지만 내부의 반대가 워낙 심했다. 회삿돈을 쓸 수 없게 되자 그는 사재를 털어 1974년 12월 한국반도체를 인수, 삼성반도체로 사명을 바꾸고 웨이퍼를 생산하며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출발을 알렸다.

강 박사는 1976년까지 삼성반도체 사장을 맡아 한국 최초의 시계용 반도체 칩을 생산했고 1983년에는 현대전자 반도체(현 SK하이닉스) 설립을 자문하기도 했다. 초창기에 삼성반도체는 미국 등 선두주자들의 기술이전 거부로 어려움을 겪었고, 한때 부도 위기를 맞기도 했다. 경영진단을 실시한 그룹 비서실에서는 더 이상 나빠질 게 없는 'F'라고 평가했다. 시장에서도 '3년 안에 실패할 것이다' 'TV도 제대로 못 만드는데 최첨단산업은 위험하다'고 했다.

당시 반도체 사업은 인구 1억명 이상, 국민소득 1만달러 이상, 국내 소비 50% 이상이 되어야 가능하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우리는 어느 하나도 충족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던 삼성반도체는 1980년 1월 삼성전자로 흡수합병됐다. 비관적 전망에 아랑곳하지 않고 삼성은 공격적인 투자를 시작했다. 초기에 반도체 사업을 반대하던 이 창업주의 생각이 바뀐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 창업주는 1981년 9월 그룹 전체 임원회의에서 반도체를 기업의 흥망이 걸린 사업이라고 강조하면서 꼭 성공시키겠다고 말했다. 무모한 도전이라는 의견은 여전했지만 '싸워보기도 전에 항복할 수 없다'고 했다.

1983년 12월 1일 개발에 나선 지 6개월 만에 309개 공정을 자력으로 개발, 국내 최초로 64K D램 개발에 성공했다(조선일보 1983년 12월 6일자·사진). 광고에서는 미국과 일본에 이어 반도체 산업을 세계 3위로 올려놓았다고 소개했다.
64K D램은 머리카락 굵기의 50분의 1 정도인 가는 선 800만개가 실리콘 판 위에 집적돼 있고, 글자 8000자를 기억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초의 메모리 반도체인 삼성의 64K D램은 2013년 문화재청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그 뒤 삼성은 64M D램(1992년), 256M D램(1994년), 1GB D램(1996년)을 세계 최초로 내놓으며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업으로 부상했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