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서초포럼

[서초포럼] 미국에 달린 중소기업 생존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8.28 18:27

수정 2025.08.28 18:34

오동윤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오동윤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그동안 미국은 과거 강대국과 달랐다. 다른 나라를 힘으로 짓밟지 않았다. 조공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전쟁이 일어나면 마치 자기 나라처럼 싸워줬다. 그들은 항상 세계평화,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외쳤다.

그래서 미국은 존중받았다.

그런 미국이 달라졌다. 거침없이 관세폭탄을 날린다. 일방적이고, 막무가내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다. 필리핀도 20%의 관세를 청구받았다. 부리나케 달려가니 1%p 깎아줬다. 그리고 필리핀은 미국에 관세를 아예 부과하지 않기로 했다.

각국 정상들은 미국 투자를 약속했다. 아랍에미리트(UAE)는 무려 1조6000억달러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유럽연합(EU)은 각각 6000억달러, 일본은 5500억달러, 카타르는 5000억달러다. 정치적 약속도 숨어 있다. 실제 그만큼 투자가 이뤄질지는 두고 봐야 한다. 각국은 눈치를 보며 액수를 맞춘 듯싶다. 아니면 미국이 부르는 대로 받아 적었든가.

한국도 빠질 수 없다. 5000억달러다. 16개 대기업이 직접 15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머지 3500억달러는 투자펀드 조성이다. 대기업의 투자는 제법 구체적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에 370억달러, 현대차는 자동차·로보틱스·철강에 260억달러, 한화는 조선 인프라에 50억달러를 투자할 예정이다.

어찌 됐든 1500억달러는 확정적이다. 우리 돈으로 대략 203조원이다. 2024년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7.1%, 정부 예산의 30.8% 수준이다. 한국 상위 1000대 기업의 연구개발 총투자액(83조6000억원)의 2.5배다. 미국 투자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투자액이 많아 보이지만, 필리핀은 관세를 1%p 깎았고 우리는 5%p 깎았다. 투자액이 많고 적음을 논의하는 것은 의미 없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3대 산업(반도체, 자동차, 조선)에 투자가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내연기관 자동차 1대를 생산하는 데 대략 3만개 부품이 들어간다. 대형 상선 1척 생산에 최대 100만개 부품이 필요하다. 볼트까지 다 세면 그렇다. 현대차그룹에 부품을 납품하는 1차, 2차 협력사는 모두 690개다. 조선 3사의 1차 협력사는 5184개다. 문제는 바로 이거다. 미국 투자가 시작되면 이들 기업은 살길이 막막해진다. 공급사슬 내 3차, 4차 협력사까지 합치면 엄청난 숫자다.

우리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이다. 굳이 기억을 더듬어 보면, 현대차의 중국 진출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맞춰 현대차는 중국에 투자했다. 당시 많은 협력사가 같이 갔다. 현대차도 그걸 원했고, 협력사도 쫓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먹고 살려면 방법이 없지 않은가. 당시 110개 협력사가 중국에 투자했다. 투자금이 모자라면 현대차는 납품대금을 선지급했다. 협력사는 한국에서 원부자재를 수입해다 썼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은 그렇게 늘어났다.

미국은 이게 불가능하다. 거리가 너무 멀다. 한국에서 원부자재를 갖다 쓸 수 없다. 멕시코에서 수입하는 게 훨씬 유리하다. 현대차는 미국과 멕시코에 협력사를 구축한 상태다. 이렇게 되면 한국의 분업구조와 공급망 자체가 바뀐다. 대기업이 빠져나간 도시에 흉물처럼 남아있는 산업단지를 기억해야 한다. 이런데 우리는 제조업 르네상스를 외친다. 되겠나 싶다.

대기업은 속으로 미국 투자를 반길지 모른다. 노란봉투법, '센 상법' 등 바람 잘 날이 없지 않은가. 협력사는 대부분 중소기업이다. 이제 대기업의 바짓가랑이라도 잡아야 한다. 그야말로 중소기업은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

꼭 중소기업이 우선일 필요는 없다. 그래도 이번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중소기업 관련 인사가 한 명도 없었다.
적어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나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은 가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1500억달러는 서서히 빠져나간다.
그만큼 공급사슬이 깨지고, 중소기업도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오동윤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