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년 전 신길동서 사라진 첫째딸 지영숙
남동생과 놀러 나간 날 혼자만 못 돌아와
가난 때문에 못 먹이고 못 입힌게 평생 恨
DNA 등록… 지금도 동네 곳곳 찾아다녀
남동생과 놀러 나간 날 혼자만 못 돌아와
가난 때문에 못 먹이고 못 입힌게 평생 恨
DNA 등록… 지금도 동네 곳곳 찾아다녀
이순기씨는 53년 전 잃어버린 첫째 딸 지영숙씨(현재 나이 56세·사진)를 생각하면 미안함이 먼저 떠오른다. 가난 때문에 영숙씨에게 제대로 해준 게 없다고 이씨는 회상했다. 그는 "죽기 전 영숙이를 만나 안아봐주고 따뜻한 밥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영숙씨는 1972년 5월 1일 서울 신길동 집 앞에서 실종됐다. 점심때가 지나 연년생 남동생과 놀러 나갔다가 둘째만 집으로 돌아왔다.
이씨는 영숙씨를 찾기 위해 펄쩍 뛰며 동네를 뛰어 다녔다. 이씨 가족은 우신초등학교 근처 산 53번지에 살았는데, 대문도 없는 허름한 집이었다. 주민들이 놀라 밖으로 나왔지만 아이를 본 사람은 없었다. 이씨는 동네를 뒤지다가 저녁이 돼서야 인근 노량진경찰서와 파출소 두 곳을 찾아 실종신고를 했다.
하지만 경찰은 영숙씨를 찾는 데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이씨가 딸을 잃어버렸다는 말을 들은 경찰들은 종이에 무언가 적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씨는 "경찰들은 왜 왔냐는 식으로 눈치를 줬다"며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 걸 보고 깡패만 잡는 사람들인가 생각하면서 돌아왔다"고 했다. 이씨는 이후에도 경찰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
이씨는 그날부터 영숙씨를 홀로 찾아 나서야 했다. 아이를 잃어버리기 전부터 집에 거의 들어오지 않던 남편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었다. 서울 시내 고아원을 돌아다니고 남산에 있던 KBS도 찾아갔다. 종로에 있던 미아보호소에 영숙씨 또래 아이들이 잔뜩 모여 있는 것을 보고 기대감을 품기도 했다. 하지만 영숙씨를 찾지는 못했다.
여름이 오자 아이를 찾는 일이 힘에 부쳤다. 막내를 포대기로 업은 채 세 살배기 아들을 안았다가 걷게 하면서 돌아다녀야 했다. 저녁이 되면 막내딸은 더위를 먹고 쳐졌고 아들도 기운이 빠져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씨는 두 아이들마저 잃겠다는 두려움이 커졌다. 그는 "뜨거운 날씨에 아이들을 너무 고생시켰다"며 9월이 돼서 영숙이 찾기를 포기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씨는 영숙씨를 잊어버릴 수는 없었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녀 숨통이 트이기 시작한 즈음에 경찰서를 다시 찾았다. 하지만 "실종 직후 바로 찾았어야 한다"는 말만 듣고 돌아왔다. 이씨가 영숙씨를 다시 찾아 나선 것은 10년이 채 안 됐다. 유튜브에서 실종아동 관련 영상을 보게 되면서다. 무작정 택시를 타고 유튜브에 적힌 '아동권리보장원'이라는 곳을 데려다달라고 했다. 이후 경찰서에서 유전자(DNA)를 등록하고 최근에는 관계자들과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선 동네를 찾기도 했다.
이씨는 영숙씨를 갈색 곱슬머리에 말이 없고 착한 아이로 기억했다. 그는 "신길동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이 아이들을 외국으로 보내는 것을 봤다고 했다"며 "정부가 입양 간 아이들 정보를 더 이상 숨기지 말고 공개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unsaid@fnnews.com 강명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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