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과 유럽의 경제학자 9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응답자의 89명이 "트럼프 대통령의 연준 공격이 이미 중앙은행의 신뢰성을 훼손했다"고 답했다고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52%)은 내년 파월 의장 임기 종료 이후 연준이 독립적 금리결정보다는 백악관의 정치적 요구를 반영해 정부 차입 비용 절감과 고용 유지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했다.
노트르담대학의 크리스티안 바우마이스터 교수는 "연준이 결국 정부의 꼭두각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기 집권 이후 줄곧 연준을 압박해왔으며, 파월 의장이 금리 인하를 거부하자 공개적으로 '멍청이(numbskull)'라고 비난했다. 백악관은 지난 8월 말에는 리사 쿡 연준 이사를 즉각 해임한다고 발표하며 공격 강도를 높였다. 그러나 쿡은 법적 대응에 나섰고, 이번 사안은 백악관이 중앙은행에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의 범위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 역시 "연준 독립성 상실은 미국과 세계 경제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며 "통화정책이 특정 인사에 좌우되는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고 경고했다.
경제학자들은 연준 독립성 약화가 세계 최대 경제인 미국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는 데 대체로 동의했다. 미시간대학의 뤼디거 바흐만 교수는 "연준 독립성은 낮고 안정적인 인플레이션과 금융안정을 가능하게 한다"며 "이를 흔드는 것은 경제의 근간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의 42%는 트럼프의 공격이 강력한 인플레이션 압력을 유발할 수 있다고 답했다. 또 35%는 미국 국채에 대한 투자자 신뢰 상실이 가장 큰 위험이라고 지적했다. 독일 LBBW의 모리츠 크래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앙은행을 종속시키려는 백악관의 시도를 이해하려면 터키를 보면 된다"며 "달러는 터키 리라보다 잃을 신뢰가 더 많다"고 말했다.
의회의 견제 장치도 주목된다. 연준 고위직 임명이나 지배구조 개편에는 상원 과반 동의가 필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새롭게 지명한 스티븐 미란 연준 이사 후보에 대한 청문회가 이번 주 예정돼 있다.
FT 조사에서 82%의 응답자는 "금융시장이 백악관의 연준 개입을 부분적으로만 반영하고 있다"고 답했다. 12%는 "아직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시장이 충분히 반발하지 못하면 트럼프의 성공은 다른 중앙은행들에 대한 공격을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차입 비용을 1% 수준으로 낮춰 경기 부양과 정부 재정 비용 절감을 이루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 전문가들은 "연준이 독립성을 상실하고 정치에 종속될 경우 미국 경제가 구조적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pride@fnnews.com 이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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