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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국가 선언' 北, 35년전엔 "조선은 하나"…"南, 분열지향" 비난

연합뉴스

입력 2025.09.02 10:01

수정 2025.09.02 10:04

통일부, 1990년대 초반 8차례 남북고위급회담 문서 공개 北 "대통령도 이인모 문제에 전향적이라 들어"…비전향장기수 송환 강하게 요구
'2국가 선언' 北, 35년전엔 "조선은 하나"…"南, 분열지향" 비난
통일부, 1990년대 초반 8차례 남북고위급회담 문서 공개
北 "대통령도 이인모 문제에 전향적이라 들어"…비전향장기수 송환 강하게 요구

통일부, 남북고위급회담 문서 공개 (출처=연합뉴스)
통일부, 남북고위급회담 문서 공개 (출처=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최근 남북을 '두 개 국가'라고 선언한 북한이지만 35년 전 남북회담에서는 남북의 국호 사용조차도 분열주의라며 격하게 거부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남북회담 문서가 공개됐다.

통일부는 1990년 9월부터 1992년 9월까지 8차례에 걸친 남북고위급회담 문서를 2일 공개했다.

당시 남북은 양측 총리가 수석대표로 나선 고위급회담을 통해 분단 이래 처음으로 남북관계 전반을 규율하는 역사적인 합의서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이하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했다.

북측은 회담 내내 "하나의 조선"을 부르짖으며, 상호 실체와 체제 인정 조항을 넣자는 남측의 제안을 "분열지향적", "두 개의 조선 고착"이라며 맹비난했다.

1991년 10월 24일 평양에서 열린 제4차 고위급회담 2일차 회의에서 북측 대표단장인 연형묵 정무원 총리는 "귀측이 새로운 합의서 제목에 공공연히 북남 관계를 국가간의 관계로 정식화하고 있는데 대해서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며 "두개의 조선으로의 분열을 고착화하는 데 관심이 있다는 겨레의 비난을 면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몰아세웠다.



통일부, 남북고위급회담 문서 공개 (출처=연합뉴스)
통일부, 남북고위급회담 문서 공개 (출처=연합뉴스)


북측은 합의문에 양측의 정식 국호를 쓰는 데에도 심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북측 대표단의 안병수 대변인은 4차 고위급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남측에서 제기한 그 단일안의 제목이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간의 화해, 불가침, 협력교류에 관한 합의서 이렇게 쌍방 국호를 완전히 정식화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결국은 남측이 두 개 조선으로의 분열을 고착화한다는 그런 인식을 우리겨레들로부터 받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이 문제는 북한이 양보해 남북 합의서 최초로 쌍방의 국호가 명기됐다.

북한은 1991년 11월 15일 남북 대표접촉에서 서울과 평양에 '상주대표부'를 상호 설치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국가 간 관계처럼 보인다며 반발했다.

북측 대표단의 최우진 외교부 순회대사는 "평양과 서울에 어떤 명칭을 무엇이라 하든 간에 무슨 대표부를 설치하면 국가와 국가들 사이의 관계로서 이해된다"며 "국가들 사이에서의 관계처럼 돼서는 절대 안 되겠다"며 수용하지 않았다.

결국 북한의 주장대로 판문점에 남북연락사무소를 운영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1991년 12월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후 손 맞잡은 정원식 전 총리와 연형묵 북한 정무원 총리 (출처=연합뉴스)
1991년 12월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후 손 맞잡은 정원식 전 총리와 연형묵 북한 정무원 총리 (출처=연합뉴스)

북한은 1차 고위급회담에서는 남측의 유엔 동시 가입안은 "두 개 국가로 될 수밖에 없다"며 비난하면서 단일의석 가입안을 제기하기도 했다.

남북 고위급회담은 역사적인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도출하는 성과를 냈지만, 행동까지 담보하진 못했다.

북한 대표단의 백남순(가명 백남준) 정무원 참사실장은 1992년 9월 평양에서 열린 제8차 고위급회담에서 "우리한테는 핵무기 개발하는 핵시설도 없다"며 "남측에 있는 미국의 핵기지, 핵시설"이 문제라고 공격했다.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 결의가 나오는 등 사찰 압박이 고조하자 이듬해 3월 핵확산방지(NPT) 탈퇴를 선언했다.

1994년 송환된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를 병문안한 김일성 주석 (출처=연합뉴스)
1994년 송환된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를 병문안한 김일성 주석 (출처=연합뉴스)

한편 북한이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의중을 거론하며 비전향장기수 이인모의 송환을 강하게 요구했던 사실도 남북회담 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북측 백 실장은 1992년 9월 평양에서 열린 제8차 고위급회담에서 이인모 송환에 관해 "노 대통령도 거기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노력한다는 것이 우리한테 알려졌다"며, 북측이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남측이 송환할 의사가 있다는 의사를 타진해왔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백 실장은 "(남측이) 북남고위급회담이 아니고 다른 계통을 통해서 그런 담보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남측 대표단의 대변인직을 수행한 이동복 당시 안기부장 특보는 "절대로 (이인모를) 송환할 수 없다"며 협상 여지를 두지 않았다.

북측 주장의 진위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실제로 노태우 전 대통령은 8차 고위급회담이 진행되는 중에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 등을 수용한다면 이인모를 송환할 수 있다'는 수정된 조건을 승인하는 훈령을 내렸지만, 이는 협상이 끝날 때까지 평양의 남측 대표단에 전달되지 않았다.

추후 감사원 감사 결과 안기부 인사들이 노 대통령의 훈령 전달을 지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동복 특보는 훈령을 정원식 총리 등 대표단에 보고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기존 협상 조건을 유지하라는 가짜 훈령을 만들어 공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른바 '대통령 훈령 조작·묵살 사건'이다.


이후 들어선 김영삼 정부는 1993년 3월 이인모를 조건 없이 송환했다.

남북회담사료집 회의록편 제3권 표지 (출처=연합뉴스)
남북회담사료집 회의록편 제3권 표지 (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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