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금융일반

[기자수첩] 끊임없이 소환되는 은행

이주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9.02 18:32

수정 2025.09.02 18:32

이주미 금융부
이주미 금융부
"영업점에서 아무리 고객에게 보이스피싱이라며 송금을 말려도 통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예요. 개인의 금융거래를 막을 권한조차 없는 은행에 배상 책임을 지라니 답답합니다. 수사기관 등 정부가 앞장서서 해결해야 될 문제에 은행을 앞세우는 것 같아 부담스럽습니다."

최근 정부가 '보이스피싱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하자 은행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당혹감을 드러냈다. 이번 대책의 핵심은 금융회사에 '무과실 배상책임'을 도입한 것이다. 무과실 배상책임이 인정되면 금융회사가 비록 고의나 과실이 없더라도 보이스피싱 피해를 배상하게 된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이번 방안의 취지에 대해 "고도의 전문성과 인프라를 갖춘 금융회사들이 책임을 분담해 체계적으로 대응해야 할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보이스피싱 피해가 날로 커지는 상황에서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방향성에는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보이스피싱이 단절되지 않고, 피해자들이 피해금액을 돌려받지 못하는 큰 이유로는 피싱조직에서 총책이나 관리책 등 상부 조직원을 검거하지 못하는 점이 꼽힌다. 보이스피싱 범죄의 '정점'인 총책을 송환하는 일에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시점에 은행에 배상 책임을 묻는다니 실효성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문제는 비슷한 방식으로 자꾸 금융권이 소환된다는 점이다. 정부는 금융사들에 '생산적 금융'도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100조원 넘는 규모로 조성할 예정인 첨단기업 지원을 위한 국민성장펀드에 돈을 보태라는 것이다.

소상공인 부채 탕감을 위한 '배드뱅크', 두 배로 올린 '교육세율' 등 복지·산업·교육 등 각종 정책에 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금융사들에 손을 벌리고 있다. 정부가 안고 가야 할 책임을 민간 금융사에 떠맡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물론 금융산업의 공공성을 감안하면 은행이 사회적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금융회사의 존재 가치는 대출로 유동성을 공급하고, 기업에 출자하는 모험자본 역할을 하는 데 있다. 무한대로 소환되며 재무건전성이 나빠질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금융 소비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수익은 줄고 리스크는 커지는 방식은 결국 금융 생태계를 약화시키고, 지속가능한 혁신자본 공급도 어렵게 만든다.


정부와 정치권의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금융은 정부의 의무와 책임을 대신 떠안는 존재가 아니다.
한국금융이 금융업의 본질을 되찾을 수 있을 때 경제성장의 동반자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zoom@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