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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視角] 상하이에서 받은 충격

정상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9.04 18:54

수정 2025.09.05 09:31

정상균 경제부 부장
정상균 경제부 부장

말로만 들었던 QR코드를 차고 구걸하는 중국인을 봤다. 그는 한 손에 종이컵을 든 채 목에 건 손바닥만 한 QR코드 명찰을 흔들면서 돈을 달라고 했다. 엊그제 중국 상하이에 다녀왔다. 8년 만에 찾은 달라진 상하이에 적잖이 놀랐다. 내가 가장 먼저 체감한 변화는 여행 전 준비였다.

간편결제 ○○페이(교통·쇼핑 등)와 중국지도(길찾기) 앱을 설치해 얼굴과 신용정보를 등록하고 이용방법을 대충이라도 알아야 한다는 것. 그러지 않았다면 상하이 자유여행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해질 녘 난징둥루에서 황푸강이 보이는 와이탄까지 이어지는 길은 인산인해였다. 이 길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파노라마 같은 마천루, 유럽식 옛 건물의 화려한 야경이 아니라 길목에 자리 잡은 중국 최대 전자기업 화웨이의 매장 풍경이었다. 스마트폰 정도 있겠거니 했는데 몇천만, 몇억원 하는 전기차 여러 대가 전시돼 있어 놀랐다. 운전석에 앉아 조작도 해봤다. 외국차 못지않은 세련된 디자인, 크고 직관적인 내부 디스플레이가 인상적이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차량 앞쪽 유리창 위에 내장된 라이다(LIDAR·레이저를 쏘아 물체를 탐지하는 장치)였다. 화웨이 직원은 "자율주행이 되는 차"라고 했다. "상하이에서도 자율주행이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무인운전이 가능해도 도로 사정이 복잡해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 빅테크 바이두 등이 현재 베이징, 선전, 광저우 등 15개 도시에서 무인자율주행택시 2000여대를 운영 중이다. 상하이시는 지난 7월 말 완전 무인자율차량(로보택시)을 허가했다.

나는 상하이에서 로보택시를 타볼 생각이었다. 상하이 시민의 도움을 받아 바이두의 로보택시를 탈 수 있다는 곳으로 갔다. 충분한 정보가 없었던 터라 아쉽게도 실패했다. 하지만 내게 도움을 준 상하이 청년들에게서 세계에서 가장 상용화가 빠른 자국의 인공지능(AI) 무인자율주행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몇년 후 상하이는 간편결제 앱의 시대를 넘어 완전한 AI 시대로 바뀌어 있을 것 같다. AI 무인자율주행 택시를 타고 얼굴을 인식해 결제하고 내가 가고 싶어 하는 곳으로 연결해 줄 것이다.

여행 내내 "지난 10년 우리는 무엇을 했나"라는 뼈아픈 질문을 떨칠 수 없었다. 자동차·반도체와 같은 주력산업이 계속 잘 나갈 것으로 자만했고, 오판했다. 기득권 저항에 혁신을 포기했다. 사라져 버린 승차공유서비스도 그중 하나이고, 무인자율주행은 시작조차 못했다. 오죽했으면 며칠 전 한국은행이 폐쇄적인 국내 택시시장을 비판하며 "사회적 기금을 조성해 택시면허를 사서 없애라"는 파격적 제안(자율주행시대 택시서비스 위기와 혁신 보고서)까지 했겠나.

중국은 올해 10대 중점산업에 피지컬AI와 6세대(6G) 통신, 지능형로봇을 추가했다. 전통 제조업을 넘어 AI를 융합한 고도화까지 앞서가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미국이 견제하는 'AI 반도체의 벽'만 넘어서면 사실상 첨단 제조업의 기술을 모두 장악할 것이다. 중국 전문가 전병서는 최근 펴낸 책(차이나퍼즐-미중 기술패권전쟁 시대 생존전략)에서 "세계는 기술도 시장도 한 지구에 두 개의 체제로 가는 일구양제(一球兩制)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했다.

'제조업을 앞세워 피지컬AI에 승부를 걸겠다'는 이재명 정부의 'AI 대전환 초혁신 경제' 정책은 중국과도 유사하다. 하지만 단순히 AI를 더한다고 경제성장률이, 제조업 경쟁력이 단숨에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 빅데이터를 처리할 대규모 데이터센터와 AI반도체(GPU), 기술과 인재, 투자의 축적 없이는 안 된다.
이를 이행하기 위해 규제를 풀고 추진할 정책 역량도 있어야 한다. 과도한 기대가 아닌 과감한 시작이 중요하다.
자율주행택시부터 세종시에서 먼저 운영해 보라. 공무원들이 자꾸 타 봐야 뭘 바꿔야 할지, 어떤 정책이 필요할지,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지 않겠나. 나는 이재명 정부 임기 내에 AI 자율주행택시를 타보고 싶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