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뛰어난 학습능력, 그 비밀은 뇌 속 화학물질에 있다 [안철우 교수의 호르몬 백과사전]

[파이낸셜뉴스] 호르몬은 생명의 진화와 함께 종에서 종으로 전달되고 발전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존재할 화학물질이 있다면 바로 '호르몬'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르몬은 불멸이다. 안철우 교수가 칼럼을 통해 몸속을 지배하는 화학물질인 호르몬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삶을 좀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2022년 미국 브라운 대학교와 독일 레겐스부르크 대학교 공동 연구팀이 재미 있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8~11세의 아동 56명과 18~35세 성인 56명을 모집하여 ‘시각적 지각 학습’을 시키고 그 과정을 기능적 자기공명영상으로 촬영했다. 이들이 찾아내려고 한 것은 시각피질(후두엽)에서 아동과 성인 간의 가바 농도의 차이였다.

아이들의 가바 농도는 패턴을 학습하고 문제를 풀기까지 계속 빠르게 상승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반면에 성인들의 가바 농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했다.

또한 성인들은 한 문제를 풀고 다음 패턴을 학습할 때 이미 풀었던 문제에 사로잡혀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에 아이들은 곧바로 다음 패턴을 학습하는 데에 집중했다. 아이들이 성인에 비해 새로운 지식을 훨씬 빠르게 흡수하고 집중력도 훨씬 뛰어난 이유가 가바 농도 때문일 수도 있다는 가설을 증명한 것이다.

아동기의 가바 농도가 수학점수와 관련이 있다는 연구도 있다. 2021년 영국·미국·프랑스의 심리학자들이 한 팀을 이루어 수학문제를 푸는 능력과 가바와 글루타메이트 농도 사이의 관련성을 연구했다.

그 결과 글루타메이트 농도가 높을수록 아동의 수학점수가 낮고, 가바의 농도가 높을수록 아동의 수학점수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학습능력 향상 이외에도 부모들이 가바에 열광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가바의 성장호르몬 분비 촉진 효과다. 성장호르몬 분비는 시상하부에서 분비되는 성장호르몬 방출호르몬과 성장호르몬억제호르몬에 의해 조절된다.

시상하부는 다수의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는 곳이므로 성장호르몬도 당연히 신경전달물질의 영향을 받는다. 특히 가바는 뇌하수체 신경세포에서도 분비되기 때문에 성장호르몬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예를 들어 가바의 분비를 억제한다거나 시냅스 전달을 차단한다거나, 가바와 유사한 약물을 투여하면 성장호르몬 분비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여러 동물실험에서 확인되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일정한 패턴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약물의 작용 부위와 호르몬 환경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또한 가바는 긴장을 완화하여 깊은 수면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성장호르몬 분비를 도울 수 있다. 성장호르몬은 안구운동이 없는 비램수면, 꿈을 꾸지 않는 깊은 수면을 할 때에 가장 많이 분비된다. 가바가 잘 분비되면 그만큼 인체가 잘 이완되어 깊은 수면을 할 확률이 높아지므로 성장호르몬 분비에 어느 정도 관여한다고 볼 수 있다.

가바 농도가 높을수록 아이의 학습 능력이 높아지고 성장호르몬 분비에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라 하여도 뇌전증이나 ADHD, 심한 불안증과 조현병 등 가바 부족을 의심해볼 만한 증상이 없다면 아이의 가바 수치는 정상 범위일 것이다. 따라서 굳이 가바를 먹여야 할 필요는 없다.

가바가 몸의 컨디션에 따라서 일시적으로 떨어지거나 상승할 수 있는데 이것은 인체의 자율조절 시스템에 의해 스스로 회복한다. 비타민처럼 인체가 스스로 합성할 수 없는 물질은 우리가 신경을 써서 섭취해야 하지만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은 그럴 필요가 없다.

휴식과 잠을 충분히 취하고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스트레스를 잘 풀면서 건강한 식생활을 한다면 가바 수치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e-mail] 정명진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