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제리 카플란 "韓 AI 3강 전략, K반도체 성공모델 속에 답이 있다"[미리보는 AI 월드 2025]

조은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9.08 10:58

수정 2025.09.10 15:28

제리 카플란 스탠퍼드대 교수 AI 월드 사전인터뷰서 밝혀
"진짜 승부처 될 AI 응용 기술에 집중해야"
"휴머노이드는 '인간 대체'가 아닌 '자동화 혁명'"
"AI 시대에 '인간다움' 더 소중해질 것"
제리 카플란 스탠퍼드대 교수
제리 카플란 스탠퍼드대 교수
[파이낸셜뉴스] "미국과 중국의 거대한 코끼리들(빅테크)이 인공지능(AI) 기초모델 확보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지만, 이 버블도 머지않아 꺼질 것이다. 이 틈바구니에서 한국의 생존법이란? 한국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전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그 성공모델 속에서 AI 시대 최적의 대응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의 미래', '인간은 필요없다' 등의 저서로 유명한 AI 분야 세계적인 석학, 제리 카플란 스탠퍼드대 교수는 AI 주도권을 둘러싼 '글로벌 쩐의 전쟁'에서 한국이 승자가 되기 위해선, "미국, 중국과 같이 AI 파운데이션 모델만을 향해 달려나가는 것이 아니라, (향후 AI 산업의 진짜 승부처가 될) 자율주행과 같은 AI 응용기술에 인력과 자본을 집중 배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은 미국, 중국에 비해 자본, 인력, 기술력 모두 열세다.

게다가 후발주자다. 한국의 AI 3강 목표를 향한 매우 현실적인 처방이 아닐 수 없다.

카플란 교수는 7일 본지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미국과 중국의 수십, 수백개 기업들이 거대한 연산자원과 에너지를 소모해 가며, 값비싼 생성형 AI 파운데이션 모델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으나, 과거 반복된 산업발전의 패턴대로, 머지않아 이 버블도 꺼질 수밖에 없다"면서 "이 소모적인 싸움에서 한국이 취할 최선의 길은,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있는 AI 응용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삼성전자, LG전자 등의 반도체, 디스플레이 성공 신화를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한국은 반도체나 평판 디스플레이를 발명한 나라가 아니었지만, 응용기술로 세계시장을 주름잡고 있다"면서 "AI 시대, 최적의 전략, 그 해법은 바로 반도체 산업 성공모델에 있다"고 말했다. 카플란 교수는 오는 25일 파이낸셜뉴스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최로 서울 잠실 롯데시네마에서 열리는 'AI 월드 2025'의 기조 강연자로 나서, AI 기술이 야기할 미래상 및 해법을 제시할 예정이다.

제리 카플란 스탠퍼드대 교수
제리 카플란 스탠퍼드대 교수
―한국 정부는 미국, 중국과 함께 세계 3대 AI 강국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들 경쟁국과 비교했을 때, 자본, 기술, 인력 등 도전적이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이 세계 3대 AI 강국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선, 어떤 전략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우선, 역사적으로 반복돼 온 산업별 초기 현상을 주목해 달라.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세계는 이를 지배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의 시기를 거친다. 수많은 기업들이 생겨나고 과도한 흥분과 과잉 투자가 뒤따른다. 지금이 바로 그런 상황이다. 지금 우리는 'AI 버블'속에 있으며, 머지 않아 꺼질 가능성이 크다. 수십, 수백 개 기업이 거대한 연산 자원과 에너지를 소모해가며 값비싼 생성형 AI(챗봇, 이미지·음성·음악 생성 등) 기반 '기초 모델'을 구축하려 하고 있다. 결국 승자는 소수, 아마 2~3개 기업에 불과할 것이다. 이런 현상은 자동차, 인터넷 브라우저, 스마트폰 운영체제 시장 등에서 역사적으로 반복돼 온 현상들이다. 현재 미국과 중국이 결승선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그 끝은 아무도 모른다. 막대하게 쏟아부은 투자 대부분은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술과 기술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당신보다 돈 많은 상대와 가격 경쟁을 벌이지 말라.' 한국이 취할 최선의 전략은, 거대한 코끼리들이 막대한 투자자금을 쏟아부으면서 싸우는 동안,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있는 AI 응용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다. 동시에 AI 응용 분야 인재 개발, 전문성 축적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도체, 평판 디스플레이 성공사례가 대표적이다. 한국은 반도체나 평판 디스플레이를 발명한 나라가 아니었지만, 저비용, 대량생산 체계로 세계시장을 선도했다. AI 역시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자율주행 택시(로보택시)등 자동차 분야에서 강점을 살린다면, AI 응용 분야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저서 '인간은 필요 없다(Humans Need Not Apply)'등을 통해 노동시장에서 인간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시대를 경고했다. 더욱이 AI가 숙련 노동자의 일자리를 크게 줄일 것이라고 언급했는데, 한국은 조선, 반도체, 자동차 등 여전히 숙련 노동자가 많은 산업구조를 취하고 있다. AI시대에 한국은 어떤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가야 한다고 보는가.
▲AI는 현재의 많은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나, 역사적으로 보듯 새로운 일자리도 충분히 창출될 것이다. 수십 년 전 조선과 자동차 생산구조를 살펴봐 달라. 공장 자동화가 도입되면서 그 때와 지금, 완전히 달라지지 않았나. AI 도입은 기존 자동화에서 다시 한 번 또 다른 수준으로 나아감을 의미한다. 한국은 지금도 자동화 강국이다. AI 시대에도 이런 흐름을 이어간다고 보면 된다. 요컨대 AI 시대에서 인간은 AI 시스템을 감독하는 '관리자'로 전환하게 될 것이다.

제리 카플란 스탠퍼드대 교수
제리 카플란 스탠퍼드대 교수

―현재 테슬라, 현대차그룹 계열 보스턴 다이내믹스 등 많은 기업들이 피지컬 AI에 기반한 휴머노이드 로봇 기술을 개발 중이다. 인간이 'AI 관리자'로 전환될 것이라고 말씀했지만, AI로 인한 고용충격은 불가피할 것 같다. 산업현장에서 인간을 대체할 수준의 휴머노이드 로봇이 등장하시는 시기는 과연 언제쯤이라고 보는가. 또한 그런 시대가 도래하면, 산업 구조, 경제 질서, 고용 시스템에 어떤 변화와 충격을 예상하는가.
▲'휴머노이드 로봇'에 집중하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기계에 팔, 눈, 얼굴을 붙인다고 해서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기계는 기계이고, 사람은 사람이다. 물론, 휴머노이드 로봇은 인간의 도구일 뿐이다. 자율주행차라고 해서, 로봇을 운전석에 앉히지는 않는다. 차 자체를 재설계할 뿐이다. 대부분 산업이 그렇게 갈 것이다. 기계는 보통의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지 못한 채 특정 작업만 수행할 것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을 '인간의 대체물'이 아닌, 자동화 혁명으로 이해하는 게 맞다.

―현재의 AI는 인간을 '모방'하는 수준이다. 영화 '아이 로봇'처럼 '진정한 지능'을 달성한 AI는 현실적으로 언제쯤 가능하다고 보는가.
▲우리 생애 동안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AI는 물론 인간 지능조차 명확히 정의된 바가 없다. 기계가 '진정한 지능'을 가졌다고 합의하는 순간이 온다고 해도, 결국 그것은 여전히 기계일 뿐이다. 프로그래밍 하지 않는 한, 스스로 욕구나 목표를 가지지 않는다. 그 기계가 우리의 공감과 권리를 받을 자격이 있는가. 내 답은 명확하다. '아니오'다.

―에이전트AI, 피지컬 AI, 휴머노이드 로봇이 등장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이 궁금하다. 너무도 많은 체크 리스크가 만들어질 것 같다. AI 시대에 가장 우려되는 부분, 대비해야 하는 부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I는 인터넷, 스마트폰, 자동차, 컴퓨터처럼 엄청난 파급을 가져올 혁신이다. 하지만 아직은 초기 단계다. 정확히 어떤 효과가 나타날지는 모른다. 다만 몇 가지는 분명하다. 기계가 사람을 속이거나 조종하기 쉬워진다는 것이다. 큰 사회 문제로 발전할 수 있으며 규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영화 속처럼 기계가 자각을 갖고 인류를 멸망시킨다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허구일 뿐이다. 위험한 기계를 만드는 건 어디까지나 우리 인간이지, 기계가 아니다.

―AI로 인해, 국가 간 경제력 차이, 개인 간 경제력 차이 등 '격차사회'가 심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인상깊다.
▲AI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제도적 문제다. AI는 곧 자동화이고, 자동화는 노동 대신 자본을 투입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이익은 자본을 가진 자들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이를 완화하려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AI의 혜택을 사회 전반에 고르게 분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보편적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입장인데 향후 AI발 격차사회를 해소하기 위해, 기본소득이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보는가.
▲노동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지원할지에 대한 문제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단순하면서도 실행 가능한 방법일 수 있지만, 경제 발전 속도를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재정적으로 감당 가능해야 한다.

―향후 AI로 인해 많은 윤리적, 법적 문제가 발생할 것이란 시각이 많다. 현재 국가별로 서로 다른 AI 규제나 윤리 기준 등이 나오고 있다. '전 세계적 차원의 AI 규범'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과연 우리에게 그런 규범과 법을 정립할 수 있는 '데드라인'(기한)까지 얼마나 남았다고 보는가.
▲ 모든 신기술과 마찬가지로 가이드라인과 규제가 필요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규제는 기술 확산을 막기보다 오히려 촉진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미 기차, 자동차, 건축물 등 모든 분야에서 표준과 규범을 가지고 있다. AI도 마찬가지다. 다만 아직 혁명의 초기 단계라 최적의 규제 방식을 논하기엔 이르다. 일단 지켜보면서 조정해 나가야 한다.

―AI 시대에 인간 노동의 가치는 어디에 두어야 한다고 보는가. 어떤 직업군이 과연 끝까지 살아남을 것인지 궁금하다.
▲걱정하지 말라. 우리는 결코 쓸모없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다움을 더 잘 발휘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AI를 통한 자동화는 인간성을 줄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과정이다. 미래에는 인간이 직접 만든 것, 즉 '높은 인간적 가치'를 담은 예술과 창작물이 더 소중히 여겨질 것이다.
개인적 교감, 진정한 감정 표현, 의미 있는 인간관계를 기반으로 한 직업들이 앞으로도 남을 것이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