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건강

산만한 우리 아이, 가바로 천사 만들기 작전 [안철우 교수의 호르몬 백과사전]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0.04 07:00

수정 2025.10.04 07:00

[파이낸셜뉴스] 호르몬은 생명의 진화와 함께 종에서 종으로 전달되고 발전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존재할 화학물질이 있다면 바로 '호르몬'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르몬은 불멸이다. 안철우 교수가 칼럼을 통해 몸속을 지배하는 화학물질인 호르몬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삶을 좀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산만한 우리 아이, 가바로 천사 만들기 작전 [안철우 교수의 호르몬 백과사전]

만약 아이에게 가바를 먹이고 싶다면 어떤 증상에 먹이면 좋은지, 어느 정도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지 정확한 정보가 필요할 것이다.



가바는 체내에서 생산되는 천연 아미노산이라서 먹는 것으로 인한 부작용은 드물다. 충돌하는 약물도 보고된 바 없다. 섭취를 해도 뇌로 흡수되는 양은 매우 적기 때문에 과잉 섭취를 걱정해야 할 정도는 아니다.

다만 장기 섭취의 안전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 아이의 가바 영양제 보충을 고려 중인 사람들에게 아래 정리한 내용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

ADHD, 충동조절, 분노조절

ADHD는 아동의 3~5%에게 나타나는 발달장애다. ADHD 아동은 산만하고 충동성이 강하며 과잉행동을 보인다. 주로 도파민과 노르에프네프린 신경전달 시스템이 부족한 것과 관련이 있지만 가바와의 관련성도 제기되고 있다.

가장 신뢰할 만한 연구는 ADHD 아동에게서 ‘피질내 짧은 간격 억제현상’이 감소한 것을 발견한 연구다. 이것은 약 1~7밀리세컨드(ms·1000분의 1초)의 간격으로 뇌를 자극했을 때 나타나는 억제 현상을 측정하는 것으로 가바 수용체에 의해 매개된다. 이것이 감소했다는 것은 가바가 ADHD와 관련이 있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가바 복용이 ADHD에 도움이 된다는 뚜렷한 연구결과는 없다. 아이에게 가바를 복용시킨 부모들에게서 긍정적인 후기가 나오고 있는 정도다. 가바 복용이 스트레스 상황에서 뇌의 알파파를 증가시킨다는 연구결과가 존재하므로 이러한 후기가 전혀 근거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단, 가바 복용은 보조적 수단일 뿐이고 반드시 효과가 있다고 말할 수 없으므로 반드시 전문의에게 진단을 받아 증상을 조절할 수 있는 약물을 처방받아야 한다.

집중력과 학습능력 향상

위에 소개한 몇 가지 연구에서 알 수 있듯이 학습능력이 높은 아이들은 가바 농도가 높게 나타난다. 하지만 학습 능력이 높은 아이들에게서 가바 농도가 높게 나타나는 것과 가바 복용이 학습능력을 정말로 높이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2008년 일본 연구진은 100밀리그램의 가바를 복용한 아이들이 플라시보를 복용한 아이들보다 수학시험에서 20% 더 높은 점수를 내고 타액에서 측정된 스트레스 호르몬의 수치도 더 낮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결과를 그대로 믿는다면 가바 섭취가 집중력과 학습능력을 높이고 불안을 다스려 스트레스를 덜 받게 해준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연구는 가바 제품을 생산하는 제약회사의 의뢰 하에 진행된 것이기 때문에 신뢰성이 높지 않다. 가바가 풍부한 초콜릿을 복용한 아이들이 산술문제를 더 잘 풀고 스트레스도 덜 받는다는 연구결과와 가바를 복용한 사람들에게서 알파파 감소율이 훨씬 적었다는 연구결과 역시 이해충돌 문제를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아이의 성적이 오를 것을 기대하고 가바를 복용시킨다면 실망할 확률이 높다. 성적보다는 집중력이 조금 향상되고 차분해지는 정도로 기대를 낮추어야 한다.

수면의 질 향상

가바는 신경세포의 활성을 억제하는 물질이기 때문에 몸을 이완시켜 수면을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 이 원리를 이용하여 개발된 수면제가 바로 대중에게 익숙한 졸피뎀과 트리아졸람이다. 이 성분들은 가바 수용체와 결합하여 중추신경의 흥분을 억제하여 잠이 들게 한다.

의존성이 꽤 높은 향정신성의약품이기 때문에 의사의 처방 하에 신중하게 복용해야 한다.

그렇다면 가바를 직접 복용하는 것으로도 수면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효과를 보았다는 사용 후기는 수없이 많지만 사실 과학적 근거는 부족하다. 섭취한 가바가 혈액뇌장벽을 뚫고 신경세포로 흡수되는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설사 흡수된다 해도 반감기가 짧아서 7시간 이상의 긴 수면을 유지하기 어렵다.

하지만 희망을 걸어볼 만한 연구결과도 있다. 2018년 한국 연구팀은 40명의 불면증 환자에게 매일 300mg의 가바를 4주 동안 섭취하게 했다. 그러자 잠들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실험 전 13.4분에서 실험 후 5.7분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참가자들이 직접 느낀 수면의 질도 크게 상승했다.

만약 아이가 심각한 수면장애나 불면증에 시달린다면 반드시 진단을 받아 전문의약품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고 아이가 잠을 너무 늦게 자려고 한다거나 밤에 잠을 못 자서 낮에 조는 일이 많은 정도라면 가바 보충제를 시도해 볼 수 있다.

가바 복용이 정말로 수면의 질을 높인다는 보장은 없으나 긴장을 완화하고 몸을 이완시켜 수면에 어느 정도는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있다.

성장호르몬과 근육 부스터

가바가 성장호르몬 분비를 촉진해서 키와 근육을 키우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2008년의 한 연구는 평소 근력운동을 하는 18~30세 성인남성 11명에게 가바 3그램 또는 플라시보를 섭취하게 한 후 휴식을 취하거나 근력운동을 하게 했다.

이후 혈중 성장호르몬의 수치를 검사해보니 가바 섭취 후 휴식을 한 사람들은 성장호르몬 수치가 400% 가까이 올라갔다. 또한 가바 섭취 후 근력운동을 한 사람들은 플라시보 섭취 후 근력운동을 한 사람들보다 성장호르몬 수치가 200% 높았다.

가바 섭취 후 근력운동이 성장호르몬 분비는 물론 제지방량을 뺀 무게를 증가시켰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24명의 건강한 남성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쪽 그룹에는 유청단백질만 먹게 하고 다른 그룹에는 유청단백질과 함께 가바를 먹게 했다. 주 2회 고강도의 근력운동도 병행했다. 12주 후, 유청단백질과 가바를 함께 먹은 그룹에서 성장호르몬이 크게 상승했고 제지방량도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이런 연구는 수가 많지 않고 규모도 작고 기업의 이해관계가 얽힌 연구라서 더 많은 검증이 필요하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가바는 뇌로 좀처럼 흡수되지 않는다.
가바가 함유된 음식이나 영양제를 많이 먹는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 뇌에서 신경전달물질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주 조금이나마 뇌로 흡수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그렇게 흡수된 가바가 몸을 이완시켜 수면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꼭 복용시키고 싶다면 성장호르몬에 대한 기대보다는 긴장완화, 몸의 이완 등에 약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마음으로 시도해보기 바란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산만한 우리 아이, 가바로 천사 만들기 작전 [안철우 교수의 호르몬 백과사전]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