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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주 4.5일제·정년연장, 기업 실정 살피며 과속 말길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9.08 18:10

수정 2025.09.08 18:10

청년고용 감소·생산성 저하 예상돼
정년 늘리면 기업 비용 30조원 증가
김형선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이 8일 오전 서울 중구 금융노조 투쟁상황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금융노조는 주4.5일제 도입과 정년 연장 등을 요구하며 오는 26일 총파업에 나선다. /사진=연합뉴스
김형선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이 8일 오전 서울 중구 금융노조 투쟁상황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금융노조는 주4.5일제 도입과 정년 연장 등을 요구하며 오는 26일 총파업에 나선다. /사진=연합뉴스
근로시간 단축과 정년 연장이 서서히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는 노조 요구에 맞춰 속도를 낼 것이 아니라 산업 현장의 여러 여건을 고려해야 한다. 낮은 생산성과 과도한 인건비, 심화된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종합적으로 바로잡는 방향에서 정책의 틀을 짜야 하는 것이다.

정부·여당과 노동계는 노란봉투법 일방 처리에 이어 기득권을 가진 정규직에만 유리한 방식의 65세 정년 연장과 주 4.5일제를 밀어붙이고 있다. 기업 주도 성장을 말하면서 실제로는 어긋난 정책을 과속페달을 밟으며 진행하면 피해는 일자리에 목마른 청년들과 열악한 환경의 비정규 근로자에게 돌아갈 것이다.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으며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

현재 파업을 벌이고 있는 노조들의 공통된 요구가 주 4.5일제와 정년연장이다. 7년 만에 무분규를 깨고 파업 중인 현대차 노조를 비롯해 오는 26일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결의한 전국금융산업 노조의 핵심 안건이다. 노란봉투법 통과로 탄력을 받은 노동계는 올해 추투(秋鬪)를 통해 관철하겠다는 태도다. 기아차 노조는 한술 더 떠 주 4일제를 요구하고 있다.

상급노조 지도부의 정부 공세도 더 세질 것으로 보인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최근 이재명 대통령을 만나 "65세로 정년을 연장하는 것은 단 하루도 늦출 수 없는 과제"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과감히 주 4.5일제 시범사업을 도입, 내년을 근로시간 단축의 역사적 첫해로 만들자고 했다.

민주노총이 26년 만에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겠다고 최근 결정한 것도 두 의제의 입법화를 요구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대통령은 대선 당시 우리나라 평균 노동시간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이하로 단축하겠다며 주 4.5일제를 공약한 바 있다. 법정 정년의 단계적 연장과 연내 입법 추진도 약속했다.

임금 삭감 없이 근로시간을 줄이고 고령화 추세에 맞춰 정년을 늦추는 것은 모든 근로자의 바람이다. 하지만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기업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 그런 것을 법으로 강제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약해진 산업경쟁력이 더 떨어질 수 있다. 혜택은 대기업 고령 근로자에게만 돌아가 노동시장 양극화가 더 악화될 소지도 있다.

10년 전 55세에서 60세로 정년을 연장한 이후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더 고착화된 것은 연구를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인건비가 한정된 기업은 청년 채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정년 연장 시 5년 후 60~64세 고령 근로자 고용비용이 30조원을 넘는다고 한다. 25~29세 청년층 90만명을 고용할 수 있는 돈이다.

현행 근로제도에서 더 시급한 것은 생산성을 높일 유연한 근무체제다.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2023년 기준 OECD 38개 회원국 중 33위로 최하위권이었다. 우리처럼 제조업 비중이 큰 일본이나 독일과 비교하면 차이가 매우 크다. 주 4.5일, 주 4일 근무는 낮은 생산성을 더 저하시킬 가능성이 크다.

생산성이 낮은 이유는 경직된 근로시간 탓도 크다. 첨단산업만이라도 주 52시간 족쇄를 풀어달라는 요구는 끝내 외면당했다.
융통성 없는 근무제도가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다. 더구나 인공지능(AI)발 일자리 증발은 곧 닥칠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막무가내로 정년을 늦춘다면 청년들이 설 자리는 없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