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정 서울경찰청 화재감식과학수사관(경위) 인터뷰
김우정 서울경찰청 화재감식과학수사관(경위)은 11일 "억울한 피해를 막고, 진실을 밝히고 싶다는 마음으로 과학과 수사가 결합된 화재감식 분야에 뛰어들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환경 분야 연구원 출신인 김 경위는 2014년 서울경찰특공대 ‘폭발물 분석’ 특채로 입직해 2020년부터 서울청 화재감식과학수사관으로 일하며 서울 전역의 중대 화재 현장을 누비고 있다. 경찰 내에서 폭발물과 화재 감식을 모두 경험한 전문가는 김 경위가 유일하다.
김 경위는 화재·폭발 현장에서 원인을 밝히고 관련 증거를 분석해 수사와 재판에 활용되도록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화재감식과학수사관들은 최초 목격자와 초기 진입한 소방관의 진술을 통해 감식에 필요한 주요 정보를 수집한다. 또한 소방·전기안전공사·가스안전공사 등 사고 조사 담당자들과 잿더미가 된 현장에서 호미와 삽을 이용해 주요 단서들을 발굴한다. 연소 형상과 가연물에 대한 탄화 흔적, 전기·가스 설비 및 제품들의 상태는 화재 원인을 밝히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후 수집한 단서들을 복원해 국과수에 감정을 요청하고, 폐쇄회로(CC)TV와 진술 등의 일치 여부를 확인해 최종 결론을 도출한다. 최근에는 드론 열화상 카메라, 엑스레이(비파괴 분석), 가스크로마토그래피(화학물질 분리·분석) 등 첨단 장비가 투입돼 감식 정확도가 한층 높아졌다. 김 경위는 "화재 원인은 법정에서 유무죄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인 만큼 과학적 근거에 입각해 중립성을 유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경위는 가장 기억에 남는 화재로 서울의 한 여관 방화 사건을 꼽았다. 당시 여관 내부에 CCTV가 없어 방화를 입증하기 어려웠지만, 연소현상을 통해 해당 사건이 방화라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그는 "의류 등 가연물이 아닌 재질이 고열에 의해 녹아내리면서 남은 용융흔과 신체의 탄화물 부착여부 등을 정밀 분석해 간접 증거만으로 방화 피의자를 구속시켰다"며 "제2·제3의 피해를 막을 수 있었던 것에 큰 보람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2023년 구룡마을 화재 사건도 김 경위에게는 잊을 수 없는 현장이다. 당시 건조한 날씨 속에 불길이 삽시간에 번지며 수십여채의 가옥이 소실됐다.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화재 당일 원인을 규명해야 했던 김 경위는 곧바로 현장에 출동해 발굴·복원 작업을 직접 진행했다. 김 경위는 "20시간 넘게 영하의 혹한 속에 머무르면서도 작은 단서 하나가 생활 터전을 잃은 피해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신중한 태도로 조사에 임했다"고 전했다.
김 경위는 화재감식관의 역할을 '셜록 홈즈처럼 잿더미 속에서 사건을 재구성하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혈흔 형태 분석과 함께 화재 감식은 과학수사가 직접 사건 해결로 이어지는 드문 분야"라며 "다양한 학문 공부와 현장 경험, 사명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화재는 원인 규명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예방"이라며 "멀티탭 과부하 방지, 노후 전선 교체, 가스 차단 같은 생활 속 습관이 대형 참사를 막는다"고도 당부했다.
yesji@fnnews.com 김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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