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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노란봉투법이 불러낸 4년 만의 골리앗 농성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9.11 19:36

수정 2025.09.11 19:36

HD현대중 노조 고공 농성에 돌입
'노봉법' 힘 받은 파업 계획 줄줄이
백호선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장이 10일 오전 HD현대중공업 사내 턴오버크레인에 올라 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1
백호선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장이 10일 오전 HD현대중공업 사내 턴오버크레인에 올라 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1
HD현대중공업 노조가 올해 10여차례 부분파업을 벌인 데 이어 11일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앞서 전날 10일엔 현대중 노조뿐만 아니라 현대삼호, 현대미포 등 HD현대 조선 3사 노조가 공동으로 파업을 벌였다.

현장에선 위험천만한 장면이 다시 등장했다. 현대중 노조 조합원 30여명이 조선소 내 40m 높이의 턴오버 크레인 꼭대기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이며 사측에 요구 수용을 주장한 것이다. 턴오버 크레인은 선박 구조물을 뒤집는 데 사용하는 설비다.

크레인까지 점거한 이른바 '골리앗 농성'은 4년2개월 만이다.

노조는 회사 측 접근을 막으려고 크레인으로 향하는 공간에 오토바이 수백대를 빼곡하게 세웠다. 노조의 투쟁 수위가 계속 높아지는 것은 국회를 통과한 노란봉투법과 무관치 않다. 노란봉투법은 파업으로 인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엄격히 제한한다. 기물을 파손하고 재산에 손실을 입혀도 비용 부담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노란봉투법이 허용한 하청업체 노조의 원청업체 교섭 요구권도 노조의 투쟁열을 부추긴다. 앞서 현대제철 비정규직 노조는 직접 교섭을 요구하며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경영진을 검찰에 고소했다. 비슷한 일들이 사업장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기업의 우려가 이미 현실이 된 것이다.

조선업은 오랜 불황을 딛고 새로운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 잇단 파업으로 살아나는 조선업황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우려된다. 파업은 한국 조선업의 신뢰도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현대중 조선 3사의 수주잔액은 761억달러(약 105조원)로 3년치 이상의 일감이다. 파업이 장기화되면 납기를 맞출 수가 없다. 납기를 지키지 못하면 계약금의 10%를 벌금으로 물어야 한다. 이후 수주전에서도 불리해지는 건 당연하다.

대미 관세협상에서 큰 역할을 하고 조선업계의 새 동력으로 떠오른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도 불안해질 것이다. 미 해군이 한국 조선소에 군함 건조와 선박 운영·유지·보수(MRO)를 맡기는 데 상당한 부담을 느낄 수 있다. 노사 상생은 회사 미래와 국가 성장에 그만큼 중요하다.

노란봉투법으로 힘을 받은 노동계는 줄파업을 예고해 놓고 있다. 금융노조는 오는 26일 총파업 돌입을 선언했고 기아 노조도 강공 태세다. 노조들은 임금 인상뿐만 아니라 회사의 합병 결정과 해외 법인 신설까지 거의 모든 경영활동에 개입하고 있다. 65세 정년연장, 주 4.5일제는 이번 추투(秋鬪)에서 노조가 공통적으로 요구한 사안이다.

사측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안건까지 무리하게 요구하니 타결은 어렵고 분규 기간은 길어진다.
정년연장과 주 4.5일제가 청년세대의 취업난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지적에도 노조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우려했던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저성장이란 고난의 터널을 벗어나려면 노조가 기득권을 내려놓고 상생을 모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