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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통상압력에 플랫폼법 추진 부담… 공정위 ‘속도조절’ 시사 [좌초하는 디지털 정책]

홍예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9.14 18:32

수정 2025.09.14 18:32

트럼프 정부 들어 불확실성 커져
외국기업 차별 규제로 비칠 우려
공정위 "통상부담에 유보 불가피"
정부 부처간 정책 공감대도 부족
한국형 플랫폼 규제의 핵심으로 추진돼 온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플랫폼법)'이 사실상 좌초 수순에 들어갔다. 미국의 통상압박으로 인한 외교적 부담, 정부 부처 간 시각차, 업계 반발 등 복합적 요인이 발목을 잡으면서 공정거래위원회는 결국 별도 입법 대신 기존 공정거래법 체계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美 통상압박…정책 전환 불가피

14일 관가 및 관련 업계에 따르면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으로부터 공식 임명을 받으면서 공정위의 플랫폼 정책 기조에도 변화가 예고된다. 공정위는 그동안 플랫폼법 입법을 통해 시장질서를 제도적으로 정비하려 했지만, 이제는 기존 법령을 활용한 '차선책' 마련에 무게를 두고 있다.

플랫폼법은 네이버, 쿠팡, 카카오 등 대형 플랫폼과 입점업체 간 불공정거래를 규율하고 알고리즘이나 검색 노출 기준, 수수료 체계 등의 운영원칙을 투명화하기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목적에서 시작됐다.

공정위는 지난 2020년부터 법안 초안을 준비해 왔고, 국회에서도 일부 논의가 이어졌지만 본격적인 심사는 진전을 보지 못했다.

입법이 지연된 핵심 배경에는 미국 등 주요 교역국의 통상압력이 자리하고 있다. 플랫폼법이 외국계 플랫폼 기업을 겨냥한 차별적 규제로 비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은 무역대표부(USTR)를 중심으로 수차례 강한 우려를 전달해 왔다.

이와 관련해 주 위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플랫폼법은 독과점 규제의 성격을 갖지만, 통상협상 환경이 복잡해진 지금 상황에서 행정부가 과감하게 밀어붙이기 어려운 사안"이라며 "특히 트럼프 행정부하에서 통상협상의 불확실성이 커진 점도 부담요소"라고 밝힌 바 있다.

공정위 관계자도 "플랫폼 규제는 단순한 국내 이슈가 아니라 디지털세, 전자상거래에 대한 국제 통상규범과도 밀접하게 얽혀 있다"며 "미국 등 주요 교역국의 민감한 반응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디지털 시장은 기존 산업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며 "데이터 기반 지배력, 알고리즘 통제 등 플랫폼 산업 특유의 문제를 포착하는 데 한계가 있어 추진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현재로선 통상 부담이 크기 때문에 전략적 유보가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부처 간 입장차도 존재

정부 부처 간 입장차도 존재한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획재정부는 플랫폼법 제정이 외국계 기업과의 통상마찰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론을 견지하고 있다. 반면 공정위는 디지털 경제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플랫폼 시장을 명확히 규율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처럼 정부 내에서도 공감대가 부족한 상황에서 미국 등 통상 상대국이 플랫폼법을 차별적 규제로 간주할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공정위는 기존 공정거래법을 통해 대체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게 됐다.

문제는 현행 공정거래법으로는 플랫폼 기업의 시장 지배력과 거래관행을 포착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공정거래법은 기본적으로 제조업·유통업 중심의 전통 산업구조를 기준으로 설계돼 있다.

공정위 내부에서도 플랫폼법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공정위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플랫폼법은 입법 추진 5년 만에 사실상 장기과제로 전환됐다.

imne@fnnews.com 홍예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