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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복지병'이 부른 나폴레옹의 나라 프랑스의 파탄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9.15 18:15

수정 2025.09.15 18:15

재정적자 심화, 국가신용등급 강등
늘린 복지 줄이기 어려움을 보여줘
지난 10일(현지 시간) 프랑스 북부 릴에서 국가 마비 운동인 '모든 것을 막아라'(Block Everything) 시위대가 불타는 양배추 상자 옆에서 프랑스 국기를 들고 있다. 이날 프랑스 전역에서 정부의 긴축 정책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가 열렸다. /사진=뉴시스
지난 10일(현지 시간) 프랑스 북부 릴에서 국가 마비 운동인 '모든 것을 막아라'(Block Everything) 시위대가 불타는 양배추 상자 옆에서 프랑스 국기를 들고 있다. 이날 프랑스 전역에서 정부의 긴축 정책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가 열렸다. /사진=뉴시스

서구 문명의 자존심이자 세계 7위 경제대국인 프랑스가 요즘 굴욕의 길을 걷고 있다. 재정파탄 위기로 나라가 문을 닫을 지경이다. 이 와중에 국제 신용평가회사 피치가 프랑스의 국가신용등급을 'AA-'에서 'A+'로 깎아내렸다. 한국보다 낮은 등급이다. 나폴레옹의 대륙 제패부터 찬란한 역사를 자랑하는 프랑스마저도 재정적자 늪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의 추락이 별안간 날벼락 맞듯 벌어진 건 아니다. 이미 예고된 재앙이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가 5.8%에 달하고, 국가부채 비율은 113%를 넘어선 지 오래다. 2000년 60%였던 부채비율이 25년 만에 두 배로 급증한 것이다. 이 같은 위기를 감지하고서도 정치권은 그동안 제대로 된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

달콤한 복지에 젖은 결과가 국가가 마비될 지경에 이르는 참사를 낳은 것이다. 지금은 재정파탄 위기를 막을 방법이 안 보인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재정위기 극복을 위해 정면승부를 걸면서 2년도 안 되는 기간에 총리를 다섯 번이나 교체할 정도로 정국은 혼란에 빠졌다. 국민들은 긴축정책에 격렬히 저항하며 물러설 기미를 안 보인다.

프랑스의 현재 모습에서 한국의 미래를 투영해볼 시점이다. 정부부채와 가계부채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한국은 프랑스와 닮았다. 한국은 프랑스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우선, 재정 문제는 미룰수록 해결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당장의 정치적 부담을 피하려다 결국 국가 신뢰도까지 잃게 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특히 프랑스는 인구 고령화와 복지수요 증가를 해결하는 과정에 재정 부담이 커졌다. 한국의 미래를 내다보는 듯하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아야 할 판이지만 이마저 여의치 않은 게 프랑스의 현재 모습이다. 재정 안정성의 키를 놓치는 순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정적자 늪으로 빨려들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프랑스 국민들의 '고통분담 거부' 현상도 예의 주시할 대목이다. 프랑스 정부는 생산성 향상을 위한 공휴일 축소안을 내놨다가 여론 반발로 철회했다. 재정위기 해결을 위해서는 지출 삭감과 함께 생산성 증대는 필수다. 그러나 국민들은 적게 일하고 많은 혜택을 요구한다. '복지병'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한번 늘린 복지는 줄이기 어렵고, 한번 줄어든 근로시간은 늘리기 힘들다는 점을 프랑스 사태에서 재확인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100일을 맞아 확장재정 기조를 강조한 바 있다. 경기부양과 민생안정을 위한 재정투입은 십분 이해가 간다. 하지만 확장재정이 가져올 리스크는 복합적이어서 예상할 수 없다.
인구위기와 기후변화 등 각종 지출요인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재정 건전성은 정책의 핵심 요소로서 한시라도 등한시해선 안 된다.
자만하다가는 우리도 프랑스처럼 되지 않는다고 장담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