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테크 기업보다 자금력 약한 스타트업에 타격
【파이낸셜뉴스 도쿄=서혜진 특파원】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전문직 비자’로 불리는 H-1B 비자 수수료를 1인당 연간 10만 달러(약 1억4000만원)로 대폭 증액하기로 한 가운데 이번 조치가 미국이 스스로 기술적 우위를 포기하고 인공지능(AI) 개발 등에서 중국의 추격을 허용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21일 보도했다.
닛케이는 이날 "H1B 비자는 오픈AI, 엔비디아 같은 AI 기업뿐만 아니라, 테슬라나 스페이스X 같은 미국의 급성장 제조·우주 기업에도 기폭제 역할을 해왔다"며 "이번 제한은 미국이 스스로 기술적 우위를 포기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으며 AI 개발 등에서 중국의 추격을 허용하는 위험도 수반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H-1B 비자 수수료를 현 1000달러(약 140만원)의 100배인 10만 달러로 올리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새 수수료 규정은 9월 21일 0시 1분부터 발효된다.
닛케이는 "이번 조치는 사실상 H-1B 발급 제한"이라며 "전 세계에서 우수한 인재를 유치해 성장해온 테크 기업들에 큰 타격이 될 뿐만 아니라 미국의 기술적 우위 자체를 흔들 수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H-1B 비자는 테크 기업이나 컨설팅 기업 등이 미국에서 전문성을 갖춘 외국인 직원을 채용하기 위해 활용돼왔다.
지난해 기업별 비자 활용 순위에서는 아마존닷컴, 미국 IT 컨설팅 기업 코그니전트, 영국 회계 대기업 언스트앤영, 인도의 타타 계열 IT 서비스 회사,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이 상위에 올랐다.
비자 취득자는 국적별로 인도가 70%, 중국이 10%를 차지한다. 특히 테크 기업의 경우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 최고경영자(CEO),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 CEO 등 인도계 경영자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인도와 중국 출신을 비롯한 외국인 기술자들 역시 핵심 개발 인력으로 일해왔다.
H-1B 비자는 매년 8만5000건으로 발급 상한이 정해져 있으며 기업이 스폰서가 돼 신청한 뒤 추첨을 통해 획득해야 한다. 외국인 직원들에게는 6년의 유효기간 동안 미국 영주권을 목표로 하는 ‘발판’의 성격도 있다.
과거 미 행정부는 H1B 비자를 통해 유치한 해외 우수 엔지니어들이 그동안 미국의 기술 혁신을 이끌어왔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대학 졸업자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이유로 외국인 비자 제한에 나섰다. 유학·취재 비자의 체류 기간 단축에 이은 조치다.
이번 조치는 대형 테크 기업보다 자금력이 부족한 스타트업에는 특히 큰 타격이 예상된다. 비용 부담으로 인해 H-1B가 AI 분야를 비롯한 일부 초고연봉 엔지니어들에게만 적용될 가능성도 있다고 닛케이는 분석했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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