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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화 사상 최저 행진…‘엔 캐리 트레이드’ 재현되나

서혜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9.23 14:57

수정 2025.09.23 15:04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도쿄=서혜진 특파원】일본 실질금리가 마이너스에 머물면서 엔화 매도에 따른 엔화 약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23일 보도했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8월 발생한 '블랙 먼데이'의 원인으로 지목됐던 '엔 캐리 트레이드'가 재현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엔 가치 사상 최저치..원인은 '엔 캐리 트레이드'?

닛케이에 따르면 최근 미국 달러를 제외한 주요 통화 대비 엔화 가치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스위스프랑 대비 엔화 환율은 지난 18일 한 때 187엔대까지 하락해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다음날인 지난 19일 유로화 대비 엔화 환율은 174엔대 중반으로 내려가면서 지난해 7월 기록한 사상 최저치(175엔대 중반)에 근접했다.



영국 파운드 대비로도 엔화 환율은 연초 이후 최저 수준인 201엔대 초반까지 하락했다. 브라질 헤알화와 멕시코 페소 대비로도 연초 이후 최저치에 다가서고 있다. 유일하게 미 달러가 연내 추가 금리인하 관측에 약세를 기록하며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은 횡보세를 보이고 있다.

주요 통화 대비 엔화 약세 원인 중 하나는 '엔 캐리 트레이드'라고 닛케이는 지적했다.

'엔 캐리 트레이드'란 초저금리인 엔화로 자금을 조달해 금리가 높은 국가의 자산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국가마다 다른 이자율 차이에 초점을 맞춘 차익 거래의 일종이다. 빌린 엔화를 고금리 통화로 바꾸는 과정에서 엔화를 매도하기 때문에 엔화 약세 압력을 가하고 반대로 거래가 해결되면 엔화 강세 압력을 준다.

일본은 1999년 제로금리를 도입하고 미국발 금융위기인 리먼사태 직후인 2008년 12월에 0.3% 전후로 정점을 찍은 뒤 2010년대 들어선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했다. 이에 글로벌 투자자들은 엔화를 빌려 미국 달러 등 고금리 통화나 고수익 자산에 투자하는 전략을 오랫동안 구사해왔다.

지난해 7월 초 37년 반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인 달러당 161엔대 후반까지 떨어진 엔화 가치는 같은 달 말 달러당 141엔대까지 급등했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이 시장 예상을 깨고 그 해 7월 31일 기준금리를 현재 0~0.1%에서 0.25%로 인상한다고 발표한데다 추가 금리인상까지 시사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9월 금리인하 전망이 겹치면서 글로벌 투자자들이 엔화 매도 포지션을 일시에 청산, 엔화 강세 압력이 커졌다.

■낮은 환변동성·실질금리에 엔 캐리 트레이드 '인기'


이후 부진해진 엔 캐리 트레이드는 최근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고 닛케이는 말했다.

실제로 BOJ가 최근 발표한 올해 1~7월 외국은행 일본 지점의 본국 본점 송금 계정의 월간 평균치는 12조7178억엔을 기록했다. 이는 2000년대 '엔 캐리 붐'의 최후반이던 2008년(14조1361억엔) 이후 최대 규모다.

닛케이는 "외환시장에서 전반적인 변동성이 줄어들고 있고 엔화 환율 변동성도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며 "펀드 등 투자자들은 환율 변동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금리 차익을 노리는 엔 캐리 트레이드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당분간 엔 약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강해지고 있다. 미즈호증권의 오모리 쇼오키 수석 전략가는 지난 19일 고객에게 보낸 메모에서 "엔화가 안전자산에서 조달 통화로 바뀌면서 큰 폭의 엔고·달러 약세를 기대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일본의 낮은 실질금리(정책금리-물가상승률)도 엔화 매도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일본의 실질금리는 현재 -2.2%까지 하락했다. 한 일본 현지 은행 외환 딜러는 “다른 국가와 비교해도 일본만 실질금리가 크게 마이너스 상태"라며 "엔화 매도의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정치 불확실성도 엔화 매도세를 떠받치고 있다.

이달 초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사임을 표명한 뒤 후임을 결정할 자민당 총재 선거가 지난 22일 고시됐으며 내달 4일 투·개표가 진행된다.

일본 국회에서 여당이 중·참의원에서 과반을 잃은 상황이라 법안이나 예산안을 통과시키려면 야당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의 우노 다이스케 수석 전략가는 “누가 승리하든 야당을 고려한 재정 확대적인 정권 운영을 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현재 엔화 매도의 배경에 있다”고 말했다.

■변수는 BOJ 금리인상.."큰 폭 아니면 엔 약세 지속"

일각에서는 BOJ의 추가 금리 인상 전망이 강해질 경우 엔화 매도에 역풍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BOJ가 이르면 오는 10월 추가 금리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지난 22일 장기금리의 지표가 되는 일본 10년물 국채 금리가 약 1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다만 BOJ의 추가 금리인상으로 엔화 매도가 멈춘다 해도 엔화 약세에 제동이 걸린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고 닛케이는 지적했다.


쿠오카파이낸셜그룹의 사사키 도오루 수석 전략가는 “실수요 기반의 엔화 매도를 이끌고 있는 해외 직접투자 확대나 디지털 적자 규모를 감안하면 BOJ가 실질금리의 마이너스 폭을 크게 줄이는 수준의 금리 인상에 나서지 않는 한 엔화 약세 상황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