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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이공계 석학 외국행,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인재정책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9.23 19:19

수정 2025.09.23 19:19

정년후 활용 제도 미비로 이탈심화
누적된 연구역량 해외로 유출 우려
지난 7월 1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열린 우수인재 육성, 유치, 유출 대응 토론회. /사진=뉴시스화상
지난 7월 1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열린 우수인재 육성, 유치, 유출 대응 토론회. /사진=뉴시스화상
또 다른 한국의 이공계 석학이 국내를 떠났다. 이번에는 KAIST 최연소 임용 기록을 세웠던 송익호 명예교수가 해외로 자리를 옮겼다. 그것도 미국 제재 명단에 오른 중국 전자과학기술대로 자리를 옮겼다. 송 교수에 앞서 이기명 전 고등과학원 부원장, 이영희 성균관대 석좌교수, 홍순형 KAIST 명예교수, 김수봉 전 서울대 교수 등 국내 최고 수준의 연구자들이 떠났다. 이들 모두 중국행이다.



이공계 석학이 국내를 떠나는 건 단순히 개인적 선택이 아닌 우리나라 인재 관리의 구조적 허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으로 봐야 한다. 이들이 한국을 버리고 해외로 떠나는 이유는 명확하다. 정년이 지난 석학들이 계속 국내에서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서다. 실제로 중국행을 고려하는 석학들은 국내에서 석학들을 활용하는 제도가 미비한 점을 꼽고 있다. KAIST의 경우 정년 후에도 연구를 이어갈 수 있는 제도가 있긴 하다. 그러나 연간 3억원 이상의 연구과제를 수주해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을 붙였다. 반면 중국은 연구자금뿐만 아니라 주택, 자녀 교육비까지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국내 인재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문제는 국내 이공계 석학들이 줄줄이 떠나고 있는데도 심각한 사태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정년이 지난 노년의 학자 한명이 떠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 그러나 이공계 석학의 경우 그 존재감이 남다르다. 일반적으로 이공계에서 석학 한명이 떠나면 그가 이끌던 연구 프로젝트도 함께 통째로 사라진다. 수십년간 축적된 연구 노하우와 국제적 네트워크 및 연구 생태계가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이 운영하던 실험실과 연구팀이 해체되면서 후속 연구가 끊길 뿐만 아니라 관련 연구에 매달려온 다음 세대 연구자들까지 영향을 받는다.

더욱 심각한 사실은 국내 이공계 석학들을 해외로 빼앗기면서 정부는 이공계 인재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는 점이다. 이미 검증된 인재를 제대로 활용하기는커녕 해외로 빼앗기면서 새로운 인재를 유치하겠다는 발상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다를 게 뭔가. 더구나 외국 인재를 유치하려면 막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정주여건까지 제대로 마련해 러브콜을 해도 국내로 불러오기 힘든 게 현실이다. 마찬가지로 국내에서 이공계 인재를 키우려면 막대한 재원과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공계 인재 육성과 확보는 국가의 미래가 달린 사안이다.
그런 차원에서 현재 이공계 인재 육성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종합적으로 점검해야 할 때다. 신규 인재 육성도 중요하지만, 기존 인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정년 후에도 연구를 원하는 석학들이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추가 이탈을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