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대가 아닌 비핵화 이전에 관계정상화는 '북핵 인정' 귀결 가능성
北의 비핵화 거부 상황서 '교류 부터'…현실적이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아
'END' 이니셔티브…실용적 접근이되 핵 가진 北과 수교 우려도비핵화 대가 아닌 비핵화 이전에 관계정상화는 '북핵 인정' 귀결 가능성
北의 비핵화 거부 상황서 '교류 부터'…현실적이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아
(서울=연합뉴스) 김지헌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들고나온 이른바 '엔드(END) 이니셔티브'는 북한 핵문제에 대한 현실적 접근이라는 평가지만, 자칫 북핵을 용인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한반도 냉전 종식 방법론으로 '교류(Exchange)·관계 정상화(Normalization)·비핵화(Denuclearization)'의 영문 첫 글자를 딴 '엔드(END)'를 제시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중단·축소·비핵화'로 이어지는 3단계 비핵화를 제시한 바 있다.
기존 3단계론이 북한의 핵·미사일에 집중해 핵시설과 무기를 어떻게 처분할 것인지 다뤘다면 '엔드'는 대북 관계 전반의 방향성을 표출한 것으로 풀이된다.
3단계 비핵화론과 엔드 모두 결국은 북한이 극렬히 거부하는 비핵화에 어떻게 가까이 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산물로 해석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22일 공개된 연설에서 "비핵화라는 것은 절대로,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반대로 한미일은 김 위원장 연설 이후 개최한 외교장관 회의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절대 안 된다는 것과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확고한 의지를 가진 것 사이에서 정부는 최종 목표는 변함없이 두되 단기간 해결이 쉽지 않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실용적 방안을 고민하다가 '엔드' 이니셔티브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엔드'는 교류→관계 정상화→비핵화의 단계적 구상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북한의 비핵화 이전에 남북 교류와 남북·북미관계 정상화를 추진하겠다는 의미여서 논란도 예상된다.
이 대통령은 "교류와 협력이 평화의 지름길"이라며 교류를 먼저 놓은 의미를 설명한 뒤 "남북의 관계 발전을 추가하면서 북미 사이를 비롯한 (북한과) 국제사회의 관계 정상화 노력도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외교적 맥락에서 '관계 정상화'는 흔히 '수교'로 받아들여진다.
미국이 핵을 가지고 있는 북한과 수교한다면 이는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과거의 비핵화 담론들에서는 북미 간 수교는 비핵화의 반대급부로 여겨졌다.
가령 2022년 9월 바이든 행정부 시기 성 김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비핵화 진전 이전에 관계 정상화를 먼저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선언에서도 '북미의 새로운 관계 수립'과 '평화체제 구축', '비핵화'가 병렬로 배치됐다. 1∼3번 번호를 달고는 있지만 이행 순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남북관계의 맥락에서도 정상화의 의미를 두고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이화여대 북한학과 박원곤 교수는 남북관계에서 정상화의 함의에 대해 "자칫 북한이 말하는 '적대적 두 국가론'을 인정하는 정상화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면서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엔드'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교류부터 이행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우리는 한국과 마주 앉을 일이 없으며 그 무엇도 함께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것은 제쳐두고라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를 지키는 상황에서 북한과의 교류는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은 비핵화가 수반돼야 제대로 된 교류가 이뤄질 수 있다는 의미다.
j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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