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소각 밀어붙이는 여당
방어권 입법 후 차근히 풀어야
방어권 입법 후 차근히 풀어야
여당은 이번 정기국회 내 개정안 처리를 자신하고 있다. 기업이 성장 주역이라고 치켜세우면서도 이렇듯 실제 행보는 딴판이다.
3차 개정의 핵심은 기업의 자사주 의무소각 조항이다. 법 시행 후 신규로 취득하는 자사주는 원칙적으로 소각하고 기존 자사주는 1년 정도 유예기간을 갖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예기간 설정은 한꺼번에 소각이 많으면 기업 자본금이 확 줄어 여러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걸 감안한 조치다.
여당이 연이어 상법 개정에 나선 취지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기업이 자사주를 방패처럼 활용해 최대주주의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삼았다는 지적도 계속 나왔다. 여당은 자사주 소각까지 상법 개정 완결을 이루면 재평가받고 있는 한국 증시가 더 높이 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경영권 위협에 대한 공포를 호소하는 기업 목소리를 끝까지 외면할 순 없다.
앞서 1차 개정으로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가 명문화됐다.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의 3% 의결권 제한도 강화됐다. 2차 개정에선 자산 2조원 이상 대규모 상장사에 집중 투표제를 의무화했으며 감사위원 분리선출 대상은 2명 이상으로 확대됐다. 무분별한 소송에 휘말릴 수 있고, 경영권 위협에 상시 시달릴 수 있다는 경영계 호소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이제는 기업 우려를 덜 수 있는 경영권 방어 수단부터 입법화하는 게 맞는 순서다.
차등의결권과 포이즌필 제도가 없는 상태에서 그나마 자사주가 경영권을 지키는 역할을 했다. SK와 삼성이 과거 소버린과 엘리엇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던 것도 자사주 덕분이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자사주 의무소각이 시행되면 국내 상장사들이 소각해야 하는 자사주 규모가 72조원에 이른다. 급할 때 비상금 역할을 했던 자사주가 강제 소각 처리되면 유동성 위기 시 손쓸 방법도 없다. 재무구조 개선, 사업 재편, 인수합병 등 기업 중대 결정은 상당한 차질을 빚게 된다. 이렇게 되면 주가부양 효과도 오래 못가는 것은 물론이다. 서둘러 증시 성과를 내는 것보다 기업 펀더멘털을 지원하는 일에 더 집중해야 한다. 증시 밸류업 작업에도 끈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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