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이장과 주류 전문가 만나
최상급 신례리 귤로 만든 술
10년 이상 숙성 고급 증류주 출시 예정
최상급 신례리 귤로 만든 술
10년 이상 숙성 고급 증류주 출시 예정
[파이낸셜뉴스] 제주 서귀포시 신례리 마을. 이곳은 따스한 햇살과 시원한 해풍 덕에 감귤 맛이 뛰어나기로 유명하지만, 규격에서 벗어난 감귤 처리가 매년 고민거리였다.
이런 감귤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은 건 김공률 당시 신례리 마을 이장(시트러스 대표)과, 진로에서 주류 개발에 평생을 바쳐온 이용익 공장장이다. 이들은 감귤로 술을 만드는 '시트러스'를 2012년 설립했다. 버려지던 감귤은 이제 시트러스 포장을 두르고 제주에서 꼭 사가야 할 특산품 중 하나로 거듭났다.
시트러스가 강조하는 가장 큰 차별점은 '자연 그대로'다.
지난 24일 찾은 시트러스 양조장에선 상대적으로 낮은 도수의 발효주부터 1년 이상 숙성한 증류주까지 차례대로 맛볼 수 있었다.
시트러스에서 나온 가장 낮은 도수의 술은 12도 혼디주와 마셔블랑 스프링이다.
혼디주는 이름처럼 '같이(혼디)' 마시면 더 좋은 술이다. 1병에 제주 감귤 3개가 통째로 들어가 상큼함이 살아 있다. 저온공법으로 숙성해 감귤 본연의 향이 오래 지속되고, 양념치킨이나 닭볶음탕 같은 자극적인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여럿이 함께 마시며 제주 감귤의 싱그러움을 느끼기 좋다.
마셔블랑 스프링은 '마시다'와 프랑스어 '블랑(white)'의 합성어로, 말 그대로 감귤 화이트 와인이다. 스프링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 감귤과 한라봉 착즙액에 4~5월 감귤꽃에서 채취한 꿀을 넣었기 때문이다.
마셔블랑 스프링은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에게도 추천할 만한다. 그렇다고 너무 달지도 않다. 봄날 감귤꽃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것이 특징이다. 시트러스의 추천 조합은 파스타, 초밥, 카나페다.
미상25는 삼겹살이 생각나는 술이다. 감귤 발효주를 증류해 만든 25도짜리 증류주여서 애주가들에게 인기가 많을 듯하다. 과일향이 먼저 반기고, 목 넘김은 깔끔하다. 한 모금 삼킨 뒤 기름진 음식을 곁들이면 금상천화일 것 같다. 미상은 맛의 위상을 높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미상25보다 도수가 두배 높은 게 신례명주다. 그런데도 얼굴이 찌푸려지지 않는다. 감귤의 산뜻한 향이 은은하게 감돌고, 참나무통의 스모키함이 균형감있게 어우러진다. 초콜릿과도 어울리는 술이다. 최고급 위스키 부럽지 않다는 생각마저 든다.
신례명주는 시트러스의 연구개발을 집약한 제품이다. 제주 감귤 발효 원액의 상등액만 골라 두 번 증류하고, 최고급 참나무통에서 1년간 숙성시켜 만든다고 한다.
도수가 더 높은 특별 한정판 신례명주 갑진 58도도 출시됐는데, 앞으로 10년 이상 숙성된 고급 증류주도 출시할 계획이다. 시트러스 양조장에서 이용익 공장장이 건넨 미출시 9년산을 맛보니 '이거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신례명주보다 부드럽고, 마지막에 감귤의 향기가 탁하고 치고 들어와 오래동안 머문다.
시트러스 양조장 지하에는 숙성주가 잠들어있다. 신례리 마을사람들이 정성들여 길러낸 귤, 이 공장장의 평생 노하우와 술에 대한 애정이 합쳐져 탄생한 결과물이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린다면 발렌타인 30년산 안 부러운 30년산이 탄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stand@fnnews.com 서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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