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르포] 전산망 마비에 우체국은 '현금만'…부동산 거래도 차질

최승한 기자,

최가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9.29 16:18

수정 2025.09.29 16:00

우체국, 금융서비스는 정상화 신선식품·착불 소포·EMS 접수 중단 복지센터 무인민원발급기, 오전 10시 복구 IC주민등록증 발급 여전히 차질
29일 오전 9시 서울중앙우체국 소포 접수 창구에 관광객과 시민들이 택배를 접수하기 위해 탁송장을 작성하고 있다. 사진=최승한 기자
29일 오전 9시 서울중앙우체국 소포 접수 창구에 관광객과 시민들이 택배를 접수하기 위해 탁송장을 작성하고 있다. 사진=최승한 기자
[파이낸셜뉴스] '현금구매만 가능'
29일 오전 9시 서울 중구 서울중앙우체국. 우편물 접수 창구 앞 안내문을 본 시민들이 지갑을 열어 현금을 꺼냈다. 평소라면 카드로 우표나 소포 상자를 결제했겠지만,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 여파로 전산 장애가 발생하면서 현금 외에는 결제가 불가능했다.

우편물 발송 자체는 가능했지만 일부 우편 서비스는 막혀 있었다. 직장인 A씨(50대)는 소포 접수를 마치고 돌아서며 "접수는 됐는데 발송 확인 알람은 아직 안 온다고 한다. 오후 돼야 가능한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자동 발송되는 안내 메일이 멈추면서 기업 거래에 차질이 생겼다고 덧붙였다.

국제우편 창구 주변은 분주했다. 시민들은 커다란 박스를 바닥에 내려두고 운송장을 작성하거나 무릎을 굽혀 탁송장을 채워 넣었다. 창구에는 상자와 쇼핑백이 쌓였고 한 손으로 종이를 누르며 주소를 적는 모습에서 어수선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우체국 무인 접수기는 꺼진 채 화면이 껌껌했고 직원들은 수기로 주소지를 받아 적으며 소포를 접수했다. 황모씨(40대)는 "현금은 같이 온 일행이 내줬다"며 "도착일을 확인할 순 없지만 명절 전에 보낼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우체국 곳곳에는 '신선식품·착불 소포 접수 불가' 안내문도 붙어 있었다. 프리미엄급을 제외한 미국행 국제 특급(EMS)과 우체국 쇼핑 연계 서비스도 중단됐다. 일본으로 기념품을 보내려던 관광객 나오씨(27)는 사정을 알지 못하고 우체국을 찾았다가 지연되는 택배 접수에 한 시간 넘게 택배 상자와 씨름했다. 일부 외국인 관광객은 접수를 포기하고 소포 상자와 탁송장만 챙겨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전날 밤 9시부터 금융서비스는 정상화됐지만, 배송조회 서비스는 이날 오후까지도 먹통이었다. 6월 이후 정부 클라우드망을 통해 발송된 소포는 기록을 확인할 수 없어 위치를 알 수 없는 상태가 이어졌다.

배송 알림 문자 발송도 지연되자 시민들은 운송장 번호가 적힌 종이 영수증을 챙겨 우체국을 나섰다. 직장인 박희승씨(40)는 "그래도 우체국은 믿을 만하고 빠르니까 맡긴다"며 "평소엔 카카오톡으로 영수증이 오는데 지금은 종이로만 받으니 불편하다"고 밝혔다.

공공 민원 서비스도 한때 멈췄다. 일부 행정복지센터에서는 무인민원발급기가 멈추면서 등·초본을 발급받으려던 시민들이 창구를 이용해야 했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등본 하나 발급받으려고 일일이 줄 서려니 당황스럽다"는 반응도 나왔다. 다만 복구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전 10시를 기점으로 마포구 염리동을 비롯한 대부분 주민센터의 무인발급기가 정상 작동에 들어갔다. 염리동 복지센터 관계자는 "현재는 IC칩 주민등록증 발급을 제외한 모든 업무가 차질 없이 처리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거래 현장에서도 혼선이 빚어진 건 마찬가지였다. 특히 행정업무시스템 가동이 중단되면서 토지·건물의 권리관계 등을 확인하기 위한 각종 서류 발급이 제한됐다.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의 한 개업공인중개사는 "단순 공시 효력이 있는 등기사항 전부증명서가 아닌 더 공신력 있는 건축물대장 등 공적 장부를 보고 계약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서류 발급이 어려워져 부담이 커졌다"며 "지난 주말 사이 계약금을 돌려보내고 계약을 미룬 일도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구체적으로 토지(임야)대장, 공유지연명부, 대지권 등록부, 지적(임야)도, 경계점좌표등록부, 부동산종합증명서 등 8개 서류의 온라인 발급이 불가한 상황이다. 이들 서류는 매매·임대차 계약 전 소유자와 지목·면적을 검증하고, 대지권 유무를 통해 재건축·재개발 권리를 가르는 핵심 자료다. 특히 등기·대장류와 대지권등록부는 소유권 이전과 권리 확인에 직접 연결되는 만큼 누락 시 계약 무효나 사후 분쟁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대출을 받아 매매나 전세 계약을 하려던 수요자들도 불편을 겪어야 했다. 기존에는 은행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대출 신청 접수를 원스톱으로 진행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구청 등을 방문해 서류를 발급받은 뒤 은행 창구에 직접 제출해야 한다.


영등포구의 한 은행 대출 상담사는 "주택담보대출은 비대면으로 서류를 자동으로 끌어와 등록하는 방식이었는데 지금은 서류를 가져올 수 없는 상황이라 영업점으로 재방하거나 행정안전부 조치가 끝난 뒤 신청해야 한다"면서도 "조치가 언제 끝날지는 답변할 수 없다"고 밝혔다.

우체국 창구에 우편서비스 이용 안내문과 등기우편 알림 장애 안내문이 나란히 배치돼있다. (오른쪽) 마포구 염리동 주민센터에 행정정보시스템 일부 중단 안내문이 부착돼있다. 사진=최승한 기자
우체국 창구에 우편서비스 이용 안내문과 등기우편 알림 장애 안내문이 나란히 배치돼있다. (오른쪽) 마포구 염리동 주민센터에 행정정보시스템 일부 중단 안내문이 부착돼있다. 사진=최승한 기자
425_sama@fnnews.com 최승한 최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