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투자는 이루어지고 있지만, 회수는 요원하다. 기술특례상장은 보수화되었고, 기업공개(IPO) 심사는 까다로워졌으며, 인수합병(M&A)은 기업 간극과 규제 리스크로 좀처럼 활성화되지 않는다. TIPS 등 정부 매칭 투자사업은 '진입'에는 효과적이지만 '출구' 설계는 미흡하다. 회수가 되지 않으면 후속 투자가 정체되고, 펀드는 조기 청산 압박을 받는다. 창업자들은 성장의 마지막 퍼즐을 잃고, 투자자는 리스크만 짊어진 채 다음 투자를 망설인다.
특히 문제는 창업자가 재도전할 유인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패한 창업자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는 문화는 정착되지 않았고, 성공한 창업자조차 엑싯(투자 회수)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다시 도전하기보다 대기업 이직이나 해외 진출로 빠진다. 이는 생태계 내부에서 경험과 자본이 재투입되지 않고 외부로 흘러가는 결과로 이어진다. 장기적으로는 창업 자체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구조적 요인이다.
회수시장이 막힌 원인은 복합적이다. IPO의 문턱은 과도하게 높고, M&A는 실효성이 낮다. 코스닥은 여전히 코스피의 2부 리그로 인식되고 있으며, 기술기업은 상장 이후에도 단기 실적 압박에 시달린다. 그사이 해외 거래소로의 플립(flip·본사를 해외로 옮기는 구조전환)은 늘고 있고, 유망 스타트업은 국내에서 성장하지 않고 해외에서 엑싯한다. 이는 한국 자본시장의 신뢰 저하와 정책효과의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단면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제도 보완이 아니다. 순환구조 전반의 재설계다. 첫째, 회수 수단의 다변화가 필요하다. IPO 외에도 M&A 세제 혜택, 세컨더리 펀드 활성화, 비상장주식 거래 시장 정비 등을 통해 다양한 출구전략을 설계해야 한다. 둘째, 상장 문턱을 기술·성장 중심으로 재설계하고, 장기 비전을 가진 기업이 단계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시간과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실패 이후의 재도전도 제도화해야 한다. 파산 이력자에 대한 금융규제 완화, 창업자 신용회복 절차 간소화 등은 필수적이다.
더불어 창업 생태계가 내부적으로 선순환을 일으킬 수 있도록 액셀러레이터와 민간 엔젤 투자자들의 출구전략도 보장돼야 한다. 액셀러레이터는 고위험 초기단계에서 생태계를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들이 회수하지 못하면 장기적 지속 가능성은 위협받는다.
민간투자가 살아야 공공투자도 의미를 가지며, 창업 생태계가 관 주도에서 벗어나 민간자율 구조로 전환될 수 있다. '창업→성장→회수→재도전'이라는 고리는 단지 이상적인 구조가 아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생태계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순환 원리다.
전화성 초기투자액셀러레이터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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