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훠궈 넘어 ‘놀이공간’… Z세대, 비싸도 하이디라오 가는 이유

신지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0.06 08:30

수정 2025.10.06 08:30

K팝 팬덤·생일파티 문화 타고 Z세대 ‘성지’로 부상
무료 네일·쿵푸면 공연… 차별화된 ‘잼컨’ 서비스
직원 권한 위임·복지 제도로 유지하는 서비스 경쟁력
글로벌 확장 속 ‘가성비 훠궈집’ 도전과 성장 과제
변검 공연을 촬영하고 있는 하이디라오 방문객 모습. 사진=신지민 기자
변검 공연을 촬영하고 있는 하이디라오 방문객 모습. 사진=신지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지난 9월 30일 찾은 서울 서초구 하이디라오 매장은 평일 낮에도 북적였다. 계단을 올라 문을 열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교복 차림의 10대 손님들. 학교를 제외하고 단위면적당 10대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 어디냐 묻는다면 하이디라오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

대기석에서는 네일아트 서비스를 제공했고, 직원들은 태블릿으로 미리 주문을 안내했다. 무료 간식도 건네졌다. 안쪽 테이블에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된 ‘쿵푸면’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면을 공중에서 돌리며 춤추듯 뽑아내는 모습에 주변 손님들이 휴대폰을 꺼내 촬영했다. 식당 안은 붐볐고, 소란스러움마저 즐기는 듯한 분위기였다.

하이디라오는 단순한 식당을 넘어 Z세대의 문화공간이 됐다. K팝 콘서트 뒷풀이 성지로도 불리며, '공연이 끝나면 하이디라오가 국룰'처럼 자리 잡았다. 생일파티 영상을 유튜브나 SNS에 올리는 것도 하나의 놀이가 됐고, 매장에선 축하 노래와 작은 선물, 기념사진 등까지 즐길 수 있다. 아이돌 '엔믹스' 오해원은 '하이디라오 챌린지'에 참여해 화제를 모았고, '페이커' 이상혁 선수와 T1 선수단도 이곳이 단골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팬덤을 매개로 브랜드 경험이 확산되는 셈이다.

하이디라오 서초지점에서 주문한 메뉴들. 사진=신지민 기자
하이디라오 서초지점에서 주문한 메뉴들. 사진=신지민 기자

■ 비싸도 간다…경험 소비가 가격 저항 덮어
하이디라오의 기본은 알다시피 훠궈다. 고객은 국물 1~4종을 고른 뒤 △똠양꿍 △청유마라 △토마토탕 등 다양한 베이스와 매운맛 강도를 조절한다. 토핑은 △채소 △고기 △해산물 △완자 △두부 △계란면부터 △오리창자 △팡가시우메기살 같은 특수 재료까지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소스바에서 자신만의 레시피를 만든다. 이처럼 개인화된 '커스터마이즈 경험'은 Z세대가 선호하는 맞춤형 소비 욕구를 자극한다.

물론 훠궈 자체로는 마라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하이디라오가 MZ세대에게 각인된 이유는 '재미있는 콘텐츠' 덕분이다. 중국 전통 가면극인 변검 공연, 생일 세레머니, 혼밥 고객용 캐릭터 인형, 무료 간식과 네일 서비스 등 매장 곳곳이 놀이공간처럼 설계됐다.

서울 강남에 거주하는 대학생 오연희(20)씨는 “처음에는 샤브샤브처럼 국물이 신기해 보여 가봤는데 생각보다 맛이 좋아 몇 번 더 찾게 됐다”며 “보통 음식점과 달리 신기한 서비스도 많고 직원들이 친절해 즐겁게 머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소스를 직접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는 점이 신선했고, 생일파티를 하거나 ‘쿵푸면’ 공연을 보는 경험도 재미있었다”며 “마라탕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고 덧붙였다.

하이디라오의 작은 선물이 봉투에 담겨 있는 모습. 이현석씨 제공
하이디라오의 작은 선물이 봉투에 담겨 있는 모습. 이현석씨 제공

한국에서 하이디라오는 2~4명이 식사하면 10만원 내외는 기본이다. 중국 현지 기준 2인 식사비용도 150~200위안(약 2만8000~3만7000원) 수준이다. 그럼에도 '비싼데도 간다'는 소비 행태가 형성됐다. 단순히 훠궈 맛이 아니라 ‘특별한 경험에 지불하는 비용’이란 인식 덕분이다. 국물 선택부터 공연·서비스까지 ‘경험 소비’가 가격 저항을 덮은 모습이다.

김현수 경희대 테크노경영대학원 글로벌경영학과 객원교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하이디라오 경쟁우위 지속성에 대한 함의' 논문에서 “하이디라오는 질 높은 재료와 철저한 위생관리의 기반 위에서 고객의 기대를 초월한 감동과 만족을 시켜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했다”고 분석했다.

하이디라오 창업자 장융. 게티이미지뱅크
하이디라오 창업자 장융. 게티이미지뱅크

■ “서비스로 승부한다” 창업자 장융의 철학
하이디라오 창업자 장융(張勇)은 스촨 출신 기술자였다. 1994년 작은 훠궈 가게로 시작해, 신발을 닦아주고 아이를 돌봐주는 서비스로 고객을 붙잡았다. 그는 “맛으로는 차별화가 어렵다. 서비스로 승부해야 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회사를 키웠다. 입소문을 타고 확장한 매장은 미국·일본·캐나다 등 전세계 각지에 126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2018년 홍콩 증시에 상장한 하이디라오는 현재 시가총액 약 14조 원으로 평가된다.

하이디라오는 말단 직원에게도 고객에게 무료 메뉴를 더하거나 서비스를 바꾸는 권한을 준다. '손님이 왕'이란 철학이 현장에서 그대로 구현되는 구조다. 김 교수 논문에 따르면, 하이디라오 직원 이직률은 10% 미만으로 중국 외식업 평균(28.6%)보다 크게 낮다. 2010년대 들어서는 직원 복지와 교육을 강화하며 “내 두 손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을 조직문화로 확산시켰다. 직원추천제를 활용해 우수 인재를 뽑고 사내 기숙사와 대학 학비 지원 등을 지원한다.

또한 점장 보상제도를 통해 매장 이익 일부를 성과급으로 배분한다. 제자-손제자 구조를 만들어 성과 공유도 독려한다. 제자를 많이 배출할수록 수익이 늘어나는 구조다. 현재 양리쥐안(楊利娟) 최고경영자(CEO)는 평사원으로 입사해 27년 만에 CEO 자리에 올랐다. 직원 아이디어에서 새로운 서비스가 나오는 것도 이 같은 ‘참여형 문화’ 덕분이다.

하이디라오 홈페이지. 하이디라오 홈페이지 캡처
하이디라오 홈페이지. 하이디라오 홈페이지 캡처

■ 공급망 계열사로 ‘표준화+원가 절감’ 달성
하이디라오는 2007년부터 독자적 공급망을 구축했다. 계열사 '슈파이'는 중국 최대 식자재 유통사로, '이하이'는 훠궈 양념을 전문 생산해 2016년 홍콩 증시에 상장했다. 든든한 계열사 덕분에 전 세계 매장에 균일한 맛과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원가를 절감할 수 있었다. 김 교수는 "탄탄한 물류 시스템을 기반으로 원가우위를 위한 식재료 관리 지침서를 공유하고, 신선식품과 공산품을 구분해 효율적 공급시스템을 운영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매출은 427억위안(약 8조원)에 달했다. 지역 맞춤형 메뉴도 내놨다. 일본에서는 ‘돼지위후추탕’, 영국에서는 ‘신선 등심’, 미국에서는 ‘새우·생선’을 내놓으며 1000회 이상의 신제품을 출시했다. 한국에는 2014년 진출해 명동, 강남, 제주 등 현재 10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지난해 매출은 780억원, 올해는 1000억원 돌파가 예상된다.

■ ‘가성비 훠궈’ 도전 속, 해외로 무게 이동
한편 위기도 있다. 최근 중국 내에서는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가성비 훠궈집’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는 고급 이미지로 성장해 온 하이디라오에게 새로운 도전 과제다. 하이디라오도 이에 대응해 보급형 브랜드를 준비하며 시장 다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동시에 해외 사업부를 강화해, 중국 내수보다 글로벌 확장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필리핀·캄보디아 진출과 캐나다 몬트리올 매장 개설은 이런 움직임의 대표적인 사례다.


김 교수는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 영역을 선택해 전략적으로 선별해 확장해 나가 결과적으로 기둥이 되는 사업을 잇달아 성장시켜 회사 전체 경영을 안정시킬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며 "인재부족이라는 두려움과 성공적인 인재경영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희망을 동시에 간직한 채, 향후 지속적으로 인재를 찾는 데에 전력투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jimnn@fnnews.com 신지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