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도쿄=서혜진 특파원】일본이 다시 한 번 ‘적극 재정’의 기로에 섰다. 자민당 신임 총재로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전보장상이 취임을 앞두고 대규모 재정 확대를 예고하면서 일본 경제는 활력을 기대하는 동시에 '빚(Debt)의 역습' 가능성에 긴장하고 있다.
다카이치 총재는 지난 4일 취임 직후 기자회견에서 “무엇보다 물가 상승 대책에 힘을 쏟겠다”며 휘발유세 잠정세율의 조기 폐지를 공언했다. 법인세 감세와 ‘급부형 세액공제’ 도입 등 소득세 공제와 현금 지급을 병행하는 정책도 검토 중이다.
이는 재정건전성을 우선시했던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 상반된다.
반면 다카이치 총재는 총재 선거 승리 후 “지금 많은 국민이 물가 상승으로 고통 받고 있다. 정부가 확실히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재정 당국은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적자 국채 발행을 용인하겠다는 다카이치의 발언이 나오자 일본 재무성 관계자는 “재정의 현실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우려된다”고 반응했다.
실제로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일본의 국가 부채는 2023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250%에 달한다. 주요 선진국 중 단연 최고 수준이며 그리스가 재정 위기에 직면했던 2009년의 127%보다 훨씬 높다.
2026년 예산 기준으로 일본의 국채 이자 지불액만 13조엔(약 122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는 일본 전체 예산의 10%를 웃도는 규모다.
다카이치 정권이 추가 국채를 발행하면 금리 급등과 신용등급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시장 반응은 복합적이다. 재정 확대 정책은 증시에는 단기적으로 호재이지만 채권 시장에는 불안 요소다. 미즈호증권의 오모리 쇼키 수석전략가는 “재정 확대로 인한 국채 발행이 늘면 장기금리 상승(채권가격 하락)은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재정건전화는 긴축이 아니라 현명한 지출의 문제”라며 “재정의 여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남해 해구 지진 같은 대형 리스크에 대응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프랑스·영국 등 주요국의 재정 악화가 국채 급락과 내각 불안을 초래하는 ‘재정 적자-포퓰리즘의 악순환’이 일본에서도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번지고 있다.
BNP파리바증권의 나카조라 마나 부회장은 “경제성장과 재정건전화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균형 감각이 리더에게 필요하다”며 “지속 가능한 성장전략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재정확대는 결국 다음 세대의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시적 경기 부양보다 산업 경쟁력 강화와 재정 지속성 간의 균형을 어떻게 잡느냐가 향후 정권의 성패를 가를 분수령이 될 것”으로 봤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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