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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올해도 반복된 기업인 국감장 줄세우기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0.08 18:38

수정 2025.10.08 18:58

경제계 증인 채택 200명 넘을 듯
망신주기·과시용 출석 요구 안돼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올해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하는 기업인이 문전성시를 이룰 전망이다. 아직 17개 상임위의 증인채택 절차가 마무리되지도 않았는데 이미 190명을 넘어섰다. 최종 숫자가 올해 200명을 훌쩍 뛰어넘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기업인 증인 숫자는 159명으로 역대 최고 기록을 세운 바 있다. 1년도 지나지 않아 또다시 기록을 갈아치우게 생겼다.



기업인을 국감 증인으로 채택하는 국회의원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우려스럽다. 지난해 전체 증인 370여명 중 기업인이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국감에서 다룰 이슈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수도 없이 많다. 그런데 전체 증인에서 기업인이 차지하는 게 절반이라니 말이 되는가. 각 상임위에 소속된 의원들의 관심사안이 협소하며 준비되지 않았다는 점을 방증할 뿐이다.

이렇게 많은 기업인들을 불러놓고 유야무야 끝나는 일도 적지 않다. 지난해에도 국감에 출석했다가 질문 한 번 받지 못한 채 귀가하는 기업인들이 있었다. 바쁜 시간 속에 국감장에 불러 세워놓고 그저 들러리로 활용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이쯤 되면 실제로 기업인 증인이 필요한 게 아니라 기업인을 면박 주기 위한 도구로 증인채택을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증인을 채택하는 기준도 의문투성이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은 이수기업 노동자 집회 문제로, 정용진 신세계 회장은 중국 합작법인의 소비자 정보보호 문제로 소환된다고 한다. 이런 문제들을 하나하나 직접 그룹 총수가 국감장에 나서 소명해야 할 일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담당 실무자나 관계 부서장으로도 충분히 설명 가능한 사안을 굳이 총수를 부르는 건 어떤 의도인지 묻고 싶다.

기업인들의 바쁜 경영 행보에도 무리한 출석을 강요하다 보니 기가 막힌 해프닝도 벌어진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APEC CEO 서밋 개막일인 오는 28일 국감장에 나와야 한다. 그는 APEC 정상회의 공식 부대행사를 주관하는 의장인데, 국가적 행사 당일에 국감장으로 불러들인다는 것이 과연 합리적 판단인가.

국감은 정부 감시와 국정 점검을 다루는 헌법기관의 권한이다. 이렇게 국민으로부터 받은 권한을 기업인을 길들이고 정치권의 힘을 과시하는 도구로 사용해선 안 된다. 국감 증인으로 쉽게 채택해버리고 나중에 아니면 말고 식으로 넘길 사안이 아니다.

더구나 지금은 글로벌 경제 초격전의 시기다. 미국의 관세정책 변화로 한국 기업들이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
미국의 관세 압박에 정부는 기업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넘어야 하는 시점이다. 이렇게 기업이 악전고투로 시장개척에 사활을 걸고 있는 와중에 200명의 기업인을 국감장에 묶어둬서야 되겠는가.

매년 되풀이되는 증인 늘리기 경쟁이나 기업인 불러 모으기 관행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민생을 외치는 국회가 경제의 발목을 잡아서야 되겠는가. 꼭 필요한 기업인을 증인으로 선별하고 실제로 필요한 민생 현안에 집중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