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노벨상의 권위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주말의 디깅]

성민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0.11 08:39

수정 2025.10.11 08:39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매년 10월은 노벨상 시즌이다. 지난 6일부터 10일까지 생리의학상·물리학상·화학상·문학상·평화상 등 5개 부문 수상자가 순차적으로 발표됐고, 13일 경제학상 발표만 남기고 있다. 전 세계 이목을 집중시키는 노벨상은 언제부터 최고의 상이 된 걸까?

신문사 오보때문에 생긴 세계 최고의 상

1888년 다이너마이트를 개발한 스웨덴의 과학자 알프레드 노벨은 자신이 사망했다는 기사를 보게 된다. 실제 사망한 것은 그의 형 루드비히로, 해당기사는 오보였다.

하지만 노벨은 자신을 '죽음의 상인'이라고 칭한 기사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노벨은 자신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준 다이너마이트가 의도와 달리 전쟁터에서 살상 무기로 쓰이며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현실을 깨닫고 깊은 회의감에 빠졌다.

노벨은 '죽음의 상인'이라는 오명 대신 인류에 긍정적인 유산을 남기겠다고 결심하고, 사망하기 1년 전인 1895년 마지막 유언장을 작성했다.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기부해 상을 제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유언장에는 "국적과 성별에 관계없이 물리, 화학, 생리·의학, 문학, 평화 분야에서 인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상금을 수여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막대한 상금과 그 이상의 브랜드 가치

노벨상의 엄정한 수상자 선정 과정은 공정성과 신뢰성을 담보하며 노벨상의 권위를 드높였다. 당해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기 전인 9월부터 이미 다음해 노벨상 수상자 선정 작업이 시작된다. 심사 과정은 철저하게 비공개로 진행되며, 공식 후보 명단은 50년간 봉인된다.

거액의 상금 역시 노벨상의 권위를 떠받치는 축이다. 노벨재단은 한 해 동안 운영한기금의 이자수입의 67.5%를 5개 부문으로 나눠 상금으로 지급한다. 다만 경제학상 상금은 스웨덴 중앙은행에서 별도로 마련한 기금에서 나온다.

1901년 최초의 노벨상 상금은 876만3633크로나(약 11억8500만원)였다. 이는 당시 스웨덴 대학교수 연봉의 25년치와 맞먹는 금액이었다. 노벨재단은 초기 상금의 가치를 최대한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경제 상황과 물가 상승률을 고려해 상금을 정하고 있다. 올해 노벨상 수상자가 받는 금액은 1100만크로나(약 16억4000만원)이다.

현재 노벨상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상금을 주는 것은 아니다. 2012년 마크 주커버그 등이 만든 '브레이크스루상'은 수상자에게 300만 달러(약 43억원)를 준다. 노벨상의 약 3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노벨상은 압도적인 유명세와 상징적 가치로 그 이상의 경제적 파급 효과를 일으킨다.

11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를 찾은 시민들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의 책을 구매하고 있다. 2024.10.11/뉴스1
11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를 찾은 시민들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의 책을 구매하고 있다. 2024.10.11/뉴스1

지난해 10월 한강 작가의 작품은 노벨상 수상 5일 만에 100만부 판매를 돌파했는데, 이때 인세 계약이 10%였다면 15억원, 15%라면 22.5억원의 인세 수입을 올렸을 것으로 추산됐다. 출판계는 이듬해인 올해 판매부수가 200만부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측했는데, 이 경우 한강 작가는 인세로만 최대 45억원을 벌어들일 수 있다.

노벨상 수상이 기업의 자금 조달 규모를 키운다는 근거도 있다. 미국 조지아주립대 경제학자 폴라스테판 등이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초기 단계의 바이오텍 기업에 노벨상 수상자가 연계될 때 평균 2400만달러(약 324억원) 더 많이 조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압박에 굴하지 않은 '노벨 정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도전은 결국 무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가자지구 휴전 중재와 중동 평화 구상을 앞세우며 자신을 '평화의 중재자'로 내세웠지만,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의 판단은 달랐다.

위원회는 올해 평화상 수상자로 베네수엘라의 민주화 운동가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를 선택했다. 20년 넘게 독재 정권에 맞서 비폭력 저항을 이어온 마차도는 민주주의 회복의 상징으로 평가받는다. 위원회는 마차도에 대해 "어두워지는 세계 속에서도 민주주의의 불씨를 지킨 인물"이라며 그 헌신을 높이 샀다.

심사 과정에 트럼프 측의 공개적 압박이 영향을 미쳤느냐는 질문에 예르겐 트네 프뤼드네스 위원장은 “위원회의 결정은 오직 노벨의 유언과 평화 증진의 실제 성과에 근거한다”고 단호히 말했다. 앞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7월 옌스 스톨텐베르그 노르웨이 재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노벨상을 받고 싶고, 관세 문제를 논의하고 싶다”고 압박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한편 노벨위원회는 과거에도 정치적 압력에 굴하지 않은 전례가 있다. 2010년 중국의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에게 평화상을 수여했을 당시 중국 정부는 노르웨이산 연어 수입을 금지하는 등 외교 보복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평화상 불발 시 관세를 거론하며 압박했지만, 위원회는 이번에도 끝내 '노벨 정신'을 지켰다.
2025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베네수엘라 민주화 운동가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 사진=연합뉴스
2025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베네수엘라 민주화 운동가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 사진=연합뉴스

2025 노벨상 수상자 및 공로

△생리·의학상
- 수상자 : 매리 E. 블랑코(64) 미국 시스템생물학연구소 박사, 프레드 램스델(65) 소노마바이오테라퓨틱스 박사, 사카구치 시몬(74) 오사카대 교수 등 3인
- 공로 : 암과 자가 면역 질환 치료 및 장기 이식 성공률 높이는 데 기여한 '말초 면역 관용' 발견

△물리학상
- 수상자 : 존 클라크(83) UC버클리대 교수, 미셸 H. 드보레(72) 예일대 및 UC산타바바라대 교수, 존 M. 마르티니스(67) UC산타바바라대 교수 등 3인
- 공로 : 양자컴퓨터 기술 발전의 기반이 된 '거시적 양자역학적 터널링'과 '전기회로에서의 에너지 양자화'의 발견

△화학상
- 수상자 : 기타가와 스스무(74) 교토대 교수, 리처드 홉슨(88) 맬버른대 교수, 오마르 M. 야기(60) UC버클리대 교수 등 3인
- 공로 : 사막에서 공기로부터 물을 추출하는 등 기후 위기 대응 기술의 초석이 된 '금속 유기 골격체(MOF)' 개발

△문학상
- 수상자 :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헝가리·71)
- 공로 : 종말론적 두려움 속 예술의 힘 재확인한 강렬하고 비전적인 작품
- 대표작 : 사탄탱고, 저항의 멜랑콜리

△평화상
- 수상자 :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베네수엘라·58)
- 공로 : 베네수엘라 국민의 민주적 권리를 증진하기 위해 지칠 줄 모르고 헌신하고, 독재에서 민주주의로의 정의롭고 평화로운 전환을 이루기 위해 투쟁

△경제학상 : 13일 월요일 오후 6시 45분 발표 예정

'디깅 digging'이라는 말, 들어보셨지요? [땅을 파다 dig]에서 나온 말로, 요즘은 깊이 파고들어 본질에 다가가려는 행위를 일컫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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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s@fnnews.com 성민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