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포럼] 트레이드오프의 벽을 넘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0.09 18:46

수정 2025.10.09 18:46

최용훈 일본 도시샤대학 상학부 학장
최용훈 일본 도시샤대학 상학부 학장
경제나 경영의 문맥에서 자주 등장하는 트레이드오프(trade-off)란 개념은 자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무엇인가를 얻으려면 반드시 다른 무언가를 포기해야 함을 의미한다. 무언가를 얻으려면 무언가를 버려야 함은 경제적 의사결정의 출발점이자 때로는 삶의 진리이기도 하다. 경영전략가 마이클 포터가 "전략이란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듯이 기업이건 조직이건 트레이드오프를 인정하고 그 본질을 명확히 하는 것이 전략적 사고의 시작이자 혁신의 전제다.

문제는 상충하는 목표를 단순히 양자택일의 문제로 보지 않고, 창의적으로 극복하며 양립의 길을 찾을 때 비로소 혁신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흔히 혁신을 '창조적 파괴'라 일컫듯이, 혁신이란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내는 시도이며, 바로 그 역동성이 자본주의 발전을 이끌어 온 원동력일 것이다.

혁신은 단순히 새로운 기술의 탄생뿐만이 아니라 트레이드오프의 벽을 넘는 사고의 전환에서 시작된다.

쿠팡의 '로켓배송'은 이러한 트레이드오프를 극복한 좋은 사례다. 소비자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즉시 상품을 얻으려는 욕구와 이동비용 없이 온라인으로 손쉽게 구매하는 편의성을 동시에 추구한다. 그러나 이 두 욕구는 본래 양립하기 어렵다. 쿠팡은 전국적으로 구축한 물류 인프라에 데이터 기반의 정교한 수요예측 시스템을 결합해 온라인 쇼핑의 편의성과 오프라인 매장의 즉시성을 하나의 경험으로 통합했다. 소비자가 주문한 상품이 다음 날, 때로는 그날 밤 바로 도착하는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본래 상충하던 두 가지 욕구의 경계를 허문 것이다.

도요타의 '저스트 인 타임(Just-In-Time)' 방식도 이와 유사하다. 필요한 부품을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만큼만 조달하고, 그 부품으로 필요한 제품을 필요한 때에 생산함으로써 과잉 재고를 줄이는 동시에 고객에의 신속한 대응을 실현한 혁신이었다. 재고비용 절감과 리드타임 단축이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두 과제를 동시에 해결한 셈이다. 경제와 경영의 역사는 이런 트레이드오프의 경계를 넘어서는 수많은 실험과 도전의 역사이기도 하다.

혁신은 트레이드오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를 인정하고 더 높은 차원의 균형과 해결법을 찾으려는 과정에서 비롯된다. 양자택일이라는 단순한 해법 대신, 상충하는 목표의 공존 가능성을 모색하는 고뇌와 노력의 과정이 창조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양립 불가능한 수많은 과제들을, 기업들이 뼈를 깎는 노력으로 해결해온 혁신의 축적으로서 오늘날의 경제성장이 있었고, 사회의 진보가 있었을 터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직면한 수많은 갈등과 불확실성 역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통증의 한 과정일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문외한의 눈에도 정치 현실은 여전히 아쉽다.
진영을 막론하고 지지층 결속에만 몰두하는 정치권의 움직임은, 일견 무언가를 얻기 위해 다른 무언가를 버린다는 트레이드오프의 원칙에 충실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치야말로 상충하는 이해를 조정하고, 지지층의 기대를 잃지 않으면서도 반대층과 무관심층의 이해와 공감을 이끌어내야 하는, 고도의 혁신이 필요한 영역이다.
혁신은 기업만의 숙제는 아니다.

최용훈 일본 도시샤대학 상학부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