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생리의학상·화학상 2관왕
장기연구 보장 풍토, 우리에 교훈
장기연구 보장 풍토, 우리에 교훈
일본의 노벨상 수상 기록은 기초과학 분야에서는 수상자가 한명도 없는 우리로서는 부러울 정도다. 1949년 물리학상을 받은 유키와 히데키 박사를 필두로 지금까지 노벨상을 받은 일본인은 31명에 이른다.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등 기초분야에 집중돼 있다. 기초과학 분야에서 27명의 수상자가 배출됐다. 물리학상 12명, 화학상 9명, 생리의학상 수상자가 6명이다.
일본의 기초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은 100년 앞의 미래를 내다본 장기적 안목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학문적 풍토의 결실로 봐야 한다. 화학상 수상자 기타가와 교수가 개발한 금속·유기골격체(MOF)는 기체나 액체 분자를 흡착·저장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춰 환경에너지 분야의 난제를 해결할 획기적 발견으로 평가받았다.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맞춤형 신소재로 사막의 공기에서 물을 모으거나 이산화탄소를 포집, 지구온난화를 완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한다. 기후재앙이 지구촌을 덮친 현실에서 획기적 업적임이 틀림없다.
생리의학상을 받은 사카구치 교수는 인체 면역기능을 조절하는 '조절 T세포'의 존재를 규명, 암과 자기면역질환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꾼 공로를 인정받았다. 정교하고 부작용이 적은 방향으로 다양한 질환을 치료할 길을 열어준 것으로, 인류의 건강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연구 성과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정부와 대학이 기초과학 연구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왔다. 미래를 내다보고 과학인재를 양성했고, 그들의 끈질긴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우리가 교훈으로 삼아야 하는 것도 이 대목이다. 우리 정부의 연구개발 과제는 대부분 단기 성과에 급급하다. 논문, 특허 수가 평가기준이고 과제가 끝나면 연구비 지원도 더 이상 없다. 정책 방향이 바뀌면 연구주제 역시 유행처럼 바뀐다. 연구 결과가 축적될 시간이 없다.
일본은 개인 연구자가 20년 이상 한 주제에 몰두할 수 있도록 예산을 지원한다. 중간에 실패해도 평가주기가 길고 연구자의 지위와 생계가 안정적이어서 큰 타격이 없다. 1%의 가능성만 있다면 끝까지 집중할 수 있는 연구풍토다. 실패를 견뎌낼 수 있는 시스템이다 보니 저돌적인 연구가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연이은 노벨상 수상 쾌거는 이런 바탕이 있어 가능했다.
한국 최고의 인재들은 대부분 의대로 진학해 피부과, 성형외과, 안과 등 인기 과목의 의사가 된다. 인류의 난제를 풀고 신기술로 미래 가치를 키워야 할 인물들이 너도 나도 개원의 되기에 매달리는 것이다. 기초과학 수준이 곧 국력인 시대인데 안타까운 현실이다.
정부는 과학기술 강국을 말로만 외칠 것이 아니라 교육 제도와 연구풍토부터 바꿔야 한다. 과학기술을 우대하는 사회적 여건을 만들고, 인재들을 과학·이공계로 끌어들일 획기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어떻게 할지 모르겠으면 일본으로 공무원들을 보내 배워오도록 해야 한다.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