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다자외교에 강한 거부감
MAGA주의 작동되지 않기 때문
양자회담과 달리 氣꺾는 데 한계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 관심높아
한미정상회담 의전수준 약식 예상
APEC 본회담 참석않고 귀국 우려
MAGA주의 작동되지 않기 때문
양자회담과 달리 氣꺾는 데 한계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 관심높아
한미정상회담 의전수준 약식 예상
APEC 본회담 참석않고 귀국 우려
기민하게 일정을 변경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를 제외하고는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과의 양자 정상회담이 줄줄이 무산됐다. 미국 대통령이 로키산맥에서 하루 일정을 더 하더라도 중동사태가 악화되지는 않는다. 미국 정상은 어디에 있건 글로벌 통신 감청망인 에셜론(ECHELON)으로 전 세계를 감시할 수 있다. 그는 캐나다에 더 체류할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다.
지난 9월 트럼프는 유엔총회 연설을 위해 회의장에 입장하다가 에스컬레이터가 정지되고 연설 프롬프터가 작동되지 않는 데 화를 내며 수사까지 의뢰했다. 연설에서는 자신은 7개의 전쟁을 해결했는데 유엔은 무능하다며 200여개 회원국이 가입한 국제기구를 장시간 맹비난했다.
트럼프가 다자외교를 거부하는 이유는 현장에서 마가주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기 때문이다. 양자 정상회담에서는 상대의 카드(any cards)를 보고 관세 부과와 면박 등으로 기를 꺾을 수 있다. 다자회담이나 국제기구에서는 아무리 트럼프라도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압박 분위기를 형성하기는 쉽지 않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트럼프의 다자외교 기피 전술이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를 심하게 흔들 것 같다. 트럼프는 오는 29일 방한해 1박2일 일정을 소화한 뒤 하루 먼저 퇴장하거나 혹은 무박(無泊) 일정 가능성도 크다. 경주에서 트럼프의 관심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담판이나 베이징의 반격이 만만치 않다. 트럼프와 시진핑은 희토류 수출통제를 둘러싸고 사전 기싸움이 치열하다. 회담 참석 전까지 연막전술이 전개될 것이다.
트럼프는 한국이 의장국을 맡은 31일 APEC 본행사에 불참하고 귀국한다. 그는 앞서 26~28일 말레이시아 아세안 정상회담에 하루만 참석한 후 27일 일본으로 가서 2박3일 일정을 소화한다. 그는 신임 여성 총리인 다카이치 사나에와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다. 아마도 5500억달러의 투자를 약속한 일본의 체류 일정이 20개국이 참가하는 APEC보다 마가주의에 더 부합한다는 판단일 것이다. 도쿄에서 현란한 외교 일정으로 막대한 현금을 빨리 챙기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외교전술이다.
우리로서는 힘이 빠지는 상황이다. 20년 만에 개최된 다자 국제경제회의를 통하여 국가 위상 제고와 실리 확보를 모색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조기 퇴장으로 공동성명인 '경주선언'이 제대로 도출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트럼프는 3500억달러 투자 등 현안이 확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의 체면을 세워주기보다는 조기 퇴장으로 압박을 가하는 뒤끝이 강하게 작용한다. 한미 정상회담도 언론용 사진촬영 수준의 약식으로 진행될 것이다.
대미투자 규모에 대한 한미 간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는 진퇴양난이다. APEC 회의 일정을 이유로 미국이 요구하는 대미투자 합의는 쉽지 않다. 현재로선 트럼프의 조기 퇴장으로 APEC이 미중 정상의 관세전쟁 무대로만 활용될 것 같다. 차기 개최국인 중국의 시 주석이 2박3일간 주연으로 등장할 것 같다.
이재명 대통령은 때론 간과 쓸개를 내주더라도 국민의 삶에 보탬이 된다면 하겠다고 했다. 대미 관세협상을 의식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정서적으로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발언이지만 현실 국제정치는 녹록지 않다. 감성만으로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상대만을 탓하는 것은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제 미국의 마가주의는 뉴노멀이 됐다. 무리한 요구를 완화시키는 것도 정부의 실력이다. 기싸움은 필요하지만 대안 없이 침대축구를 구사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민관과 조야의 지혜와 능력으로 각자도생의 국제정치에서 실리와 생존을 모색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의 실용외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내용 감성정치 이외에 워싱턴을 움직일 진짜 실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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