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아픈 부모님, 불안한 미래… 그러나 주님 안에서 괜찮을 것이다 [Guideposts]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0.14 19:40

수정 2025.10.14 19:40

지금, 괜찮다 쇼넬 엘리아센
뇌졸중으로 쓰러진 엄마 회복중
아빠는 고관절 부러져 병원 신세
임시 병상서 대기 후 섬망 증세도
건강 나빠진 부모님, 동생들과 돌봐
다가올 일들 끊임없이 두렵지만
내 머리 한쪽 땋아주는 엄마 보며
보살핌 받는 어린아이 된듯 행복
"너는 혼자가 아니다, 내가 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도 느껴
아픈 부모님, 불안한 미래… 그러나 주님 안에서 괜찮을 것이다 [Guideposts]
쇼넬 엘리아센은 아흔을 바라보는 부모님(위쪽 사진)을 돌보느라 심신이 지쳐 있었다. 다음에 다가올 일들을 생각하면 무엇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그러나 불확실한 일상 속에서도 사랑과 행복이 샘솟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여전히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지만 주님 안에서 우리는 괜찮았다.
쇼넬 엘리아센은 아흔을 바라보는 부모님(위쪽 사진)을 돌보느라 심신이 지쳐 있었다. 다음에 다가올 일들을 생각하면 무엇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그러나 불확실한 일상 속에서도 사랑과 행복이 샘솟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여전히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지만 주님 안에서 우리는 괜찮았다.

"점심으로 수프를 만들 거예요."

엄마 아빠의 집 주방에서 크게 말했다. 두 분은 주방 옆 소파에 앉아 오래된 사진 앨범을 넘겨 보며, 아빠는 팔로 엄마의 어깨를 감싸고 있었다. 사실은 부모님 댁 벽난로를 새 양초와 조명으로 꾸미러 온 것인데, 벽난로 위 선반을 비우고 먼지를 털고 나니,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가 벽난로 위 시계가 없어졌다고 착각하며, 나에게 시계가 있던 사진을 보여 주려고 했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두 분이 그 시계를 누군가에게 주고 없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 아빠 모두 최근 들어 혼란스러운 모습을 여러 번 보이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이 새로운 형태의 돌봄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에 대한 지식도, 기술도 없었다. 지금까지는 주님을 믿고 여러 번 낯선 길을 걸어왔지만, 지금의 특별한 여정은 부모님을 향한 나의 사랑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게 느껴졌다. 부모님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되, 너무 지나치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부모님께 위로받길 몹시 바라면서도, 힘든 상황에 놓인 두 분을 내가 위로해 줄 수 있길 바랐다.

"아버지 저희를 인도해 주소서."

나는 주방 싱크대에서 채소를 씻으며 기도했다. 부모님은 80대에 이르기까지는 참 건강하셨다. 그러나 작년 겨울, 엄마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엄마는 원래 살던 작은 마을의 병원보다 더 좋은 병원이 있는 곳에 가기 위해 헬기로 옮겨졌다. 엄마가 퇴원 후 집으로 돌아와 회복 중일 때, 아빠가 넘어지며 고관절이 부러졌다. 아빠는 정형외과 의사가 있는 병원으로 옮겨질 때까지 창문도 없는 응급실의 임시 병상에서 3일간 대기해야 했다.

병원을 옮길 수 있게 되었을 때, 아빠는 병원 생활로 생긴 섬망 증세를 보였다. 수술을 받은 후, 엄마가 아빠를 돌보는 모습은 정말 놀랍고 경이로웠다. 그 후 아빠는 탈장 수술을 받았고, 엄마도 건강 문제로 거동이 어려워졌다. 나와 여동생들은 집에 머물고 싶어 하는 엄마 아빠의 마음을 지켜 주려고 힘을 합쳐 돌보았다. 그러나 나는 다음에 다가올 일들과 그것이 어디로 향하게 될지 끊임없이 두려웠다.

나는 채소를 썰며, 부모님이 앨범 속 사진을 보며 추억을 나누는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두 분의 오래된 기억은 여전히 또렷했다. 추억들이 밀려왔다. 대대로 내려온 요리법, 우리집 식탁에 둘러앉아 나눈 모임들.

"잠깐."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다음 일을 하자. 머리부터 정리하고, 수프를 만들자."

나는 머리를 두 갈래로 나누고 한쪽을 땋기 시작했다.

갑자기 누군가 반대쪽 풀어진 머리를 모으느라 당기는 것 같았다. 엄마였다. 엄마는 내 머리카락을 세 가닥으로 나눈 다음 구부러진 손가락으로 머리를 땋기 시작했다. 밖에서 안으로, 밖에서 안으로. 흘깃 보니 엄마의 결혼반지가 반짝였다. 그 순간, 나는 다시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완벽한 돌봄을 받는, 완벽한 사랑을 받는, 사소한 것까지 보살핌을 받는 어린아이.

하나님의 사랑도 느껴졌다. 마치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너는 혼자가 아니다. 불확실할 때도 아름다움이 있다. 내가 여기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마련해 줄 것이다."

엄마가 머리를 다 땋자 나는 끝부분을 머리끈으로 묶는 것을 도와주었다. 머리는 단단하게 묶여 있었고, 예뻤다. 내가 땋은 것보다 훨씬 나았다.

하나님의 방식도 그러하다. 나는 몸을 돌려 엄마를 꼭 안았다.

"사랑한다, 쇼니."

엄마가 말했다.

"저도 사랑해요."

우리는 여전히 모든 답을 찾지 못했고, 나는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모른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 우리는 괜찮을 것임을 안다.

"I'm going to make us some soup for lunch," I called to Mama and Daddy from their kitchen. They sat on the sofa in the next room, leafing through an old photo album, Daddy's arm around Mama's shoulders. I'd come over to decorate the fireplace with new candles and lights, but after I'd emptied and dusted the mantel, things went awry. Mama and Daddy were convinced the mantel clock had gone missing and wanted to find pictures of it to show me. I knew they'd given it away a while back.

Both Mama and Daddy had recently begun having bouts of confusion. I didn't have the knowledge or skills to navigate this new kind of caregiving.

I'd put my trust in the Lord and traveled into unfamiliar territory many times, but this particular journey left me feeling uncertain in everything except my love for my parents. Doing all I could for them but being careful not to do too much.

Walking a tightrope with my three sisters about their care. Wanting so badly to be comforted by my parents but wanting to comfort them in their hardships too.

Father, guide us, I prayed as I washed vegetables in the kitchen sink. My parents had enjoyed good health, even into their eighties.

But last winter, Mama had a stroke just before Christmas. She was airlifted to a better hospital than the one in their small town. As soon as Mama was home and recovering, Daddy fell and broke his hip. He spent three days in a windowless emergency room holding stall awaiting transfer to a hospital with an orthopedic surgeon.

By the time of transport, he had hospital-induced delirium. I watched with wonder as Mama cared for Daddy after his surgery. Then he had a hernia operation, and Mama's own health issues made mobility difficult. My sisters and I worked together to honor Mama's and Daddy's wishes to stay in their home, but I worried constantly about the next steps and where those steps were leading.

I sliced the vegetables, listening to my parents reminiscing over photos in the album. Their long-term memories were still sharp. Memories of my own rushed in. Passed-down recipes. Get-togethers around our table.

Stop, I whispered to myself. Do the next thing. Pull your hair back. Make the soup. I parted my hair into two sections and began to braid one side.

Suddenly, I felt a gentle tug as someone gathered the loose hair on the other side.

Mama.

She divided my hair into three sections and, with her bent fingers, began to braid. Outside in, outside in. I saw the flash of her wedding ring from the corner of my eye and, in that moment, I felt like a little girl again.

Perfectly cared for. Perfectly loved. Provided for in even the smallest details.

I sensed God’s love too. It was as if he were saying, "You won't be alone. Even in uncertain times, there's beauty because I'm here. I'll provide."

Mama finished braiding, and I helped her tie the end with a rubber band. The braid was tight. Lovely. Better than my own.

God's way is like that.

I turned and held Mama close. "I love you, Shawnie," she said.

"I love you too."

We still didn't have all the answers, and I didn't know what the future would hold. But I knew, in the Lord, we'd be okay.

'가이드포스트(Guideposts)'는 1945년 '긍정적인 사고'의 창시자 노먼 빈센트 필 목사에 의해 미국에서 창간되었습니다. 한국판은 1965년 국내 최초 영한대역 월간지로 발행, 현재까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크리스천 라이프 스토리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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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가이드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