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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이 가을, 진정한 '영 포티'가 되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0.14 19:44

수정 2025.10.15 09:10

젊은층 외모·언어 어설프게 흉내
'영 포티' 스스로 젊다는 착각
20대가 보기에 이들은 '늙은이'
그들을 흉내낸다고 청춘이 되나
지난 삶의 연륜과 경험 바탕으로
답답한 틀 벗고 멋진 중년이 되길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DGIST 석좌교수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DGIST 석좌교수
가을이 왔다. 유난했던 그 폭염을 밀어내고 어느 새벽 슬그머니 가을이 찾아왔다. 우리 인생의 가을 또한 어느 순간 슬그머니 나의 젊음을 밀어낸다. 심리학자 레빈슨에 의하면, 한창이었던 젊음의 여름이 끝나고 중년의 가을을 맞이하게 될 때 계절의 '환절기'처럼, 우리는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새로운 계절에 적응하기 위해 면역력이 떨어지고 감기가 찾아오는 것처럼, 중년을 맞이하게 될 때도 심리적 적응기가 있다.

바로 중년기 위기감(middle-life crisis)이라는 심리적 갈등과 방황이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원시사회에선 중년기란 존재하지 않았다. 원시사회의 인간은 18세 전후로 신체 성장이 멈추고 자식을 두게 된다. 이후 자식을 양육하기 위해 수렵이나 채집 활동에 집중한다. 그러다 40세 가까이 되면 자식은 성장하여 스스로 삶을 꾸려가게 될 즈음, 더 이상 부모의 존재가치는 없어지게 된다. 이 시기에 인간은 신체적으로 소진되고, 심리적으로도 무기력해지면서 사망에 이르는 것이다.

고령화된 현대사회에서 40세 전후가 중년기라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래전 원시시대 때 죽음에 직면했던 경험이 무의식적으로 축적된 불안으로 인해 현대 중년기의 흔들림과 방황이 생긴다. 그러면서 지나간 젊음을 붙들고 싶어진다. 게다가 아직 20대의 기억은 바로 어제 일처럼 너무나 생생하다.

인간의 기억은 인생 전체에서 비교적 특정한 시기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20대 전후 추억을 가장 좋은 기억으로 간직한다. '회고절정((Reminiscence bump)' 심리 때문이다. 그때의 기억이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어, 나이가 들어가도 마음은 그 시절에 머물러 있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현재의 중년을 망각하고 기억 안의 젊음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젊은 층의 외모나 언어 등 어설프게 그들의 흉내를 내면서 스스로 젊다는 착각, 아니 망상에 빠지는 것이다. 바로 영포티(young forty), 젊은 40대 심리이다. 사실 중년의 이런 현상은 오래전에 이미 조명되긴 하였다. 인간의 발달과정에서 볼 때 어린 시기에는 빨리 커서 어른이 되고 싶어 한다. 다음 발달시기로 빨리 진입하고 싶다. 이런 아동, 청소년의 문제행동은 다음 성장시기를 흉내 내는 데에서 비롯된다.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 등 청소년이 성인의 행동을 따라 할 때 이는 전부 다 비행, 청소년 비행이 된다.

그렇게 미래만을 지향하기 마련인데, 1960년대 미국의 중년에게서 반대 현상이 일어났다. 당시 보수적이었던 미국 사회에 젊은 층을 중심으로 히피문화가 등장하면서 중년들이 젊은 세대를 흉내 내는 현상이었다.

히피 문화는 베트남전쟁 반대 운동과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 자유·평화·사랑을 외치는 젊은이들, 특히 대학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젊은이들의 자유로운 생각, 거침없는 의사표현, 그리고 음악, 자유분방한 패션 등 이들의 젊음과 에너지를 부러워한 중년들이 이들을 모방하기 시작하였다. 힘없는 초라한 중년이 아니라 젊게 외모를 가꾸고 활기찬 에너지를 보이면서, 지난 과거의 발달시기를 따라 하는 역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의 영포티는 젊은 층들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백팩에 운동화를 신고 아무리 젊은 층을 흉내 내어도 20대가 보기엔 이들은 너무나 늙은이다. 중년이 아니라 노년, '영포티' '영피프티'가 아니라 '틀포티'(노년의 틀딱과 포티)인 거다.


지나간 젊음을 붙들고 싶고, 자신이 아직 젊다고 과시하고 싶은 욕구 그 자체가 이미 '중년기 위기'의 증거이다. 그들을 흉내 낸다고 20대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지 않나. 중년만이 지닐 수 있는 독자적 고유성을 가져보자. 불안과 방황의 20대가 아니라 직장과 가정의 정착으로 인한 안정감과 거기서부터 나오는 조용한 자신감. 진정한 자신감은 그 어떤 상대나 상황도 수용하게 한다.


지난 삶의 연륜과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답답한 규제나 틀에서 벗어나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사고를 지닌 멋진 중년, 진정한 영포티가 되어 보자. 그런 가을이면 좋겠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DGIST 석좌교수

■약력 △서울대 학사·석사 △조지워싱턴대 ED.S △연세대 심리학과 박사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서울대 대학생활문화원 원장 △미국 NIH 겸임연구원 △한국발달심리학회 회장 △ 한국인간발달학회 회장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석좌교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