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특검 재판 그늘에 가려진 민생사건

최은솔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0.14 19:48

수정 2025.10.14 19:48

최은솔 사회부
최은솔 사회부
세찬 비가 내리던 이달 초 아침. 서울중앙지법 정문 앞에는 비를 맞으며 피켓을 든 사람들이 서 있었다. '조직사기 피해가 심각하다' '희대의 악질 사기꾼들 강력 처벌해달라'고 외치는 대형 사기 피해자들이었다. 특검 기소 사건의 재판 중계가 예정된 그날, 법원을 오가는 사람들과 기자들 대부분은 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못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3대 특검(내란·김건희·채상병) 수사가 시작된 지 석 달. 법원을 비추는 언론의 초점은 뚜렷하게 양극화됐다. 관심은 12·3 비상계엄 사태, 통일교 청탁, 주가조작 등 전직 대통령 부부와 관련된 '거대 사건'에 쏠려 있다.

특검이 기소와 공소유지를 맡은 재판 상당수가 중계되고, 법정 안에서 오가는 말 한마디와 피고인의 표정, 증거자료 하나까지 모두 뉴스가 된다. 기자들 또한 굵직한 사건에 매여 새로운 사건을 발굴할 여유가 부족하다.

특검 사건은 법원 심리 속도도 빠르다. 서울중앙지법 10여개 형사합의부는 특검이 기소한 사건을 복수로 맡으며 '포화 상태'에 가깝다. 특검 사건은 6개월 이내 1심 심리를 마쳐야 하는데, 증인 수가 많고 기록량도 방대해 연말까지 기일이 촘촘히 잡힌 경우가 대다수다. 법원은 특검 사건 재판부의 업무 과중을 줄이고자 일반 사건 배당을 줄이고, 재판부 요청 시 재배당을 요청하면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이로 인해 해당 재판부가 맡고 있던 사건이 다른 재판부로 다시 배당되기도 한다. 재판부가 바뀌면 사건을 파악하는 시간이 소요돼 심리가 지연될 가능성도 있다. 2025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형사합의부 사건의 1심 처리가 마무리되는 기간은 평균 191.5일로, 특검 사건의 처리일수인 180일을 넘는다. 특검 사건 없이도 이미 6개월 이상 걸리는 형사합의부 사건에 특검 사건이 더해지면 그 이상의 지연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헌법 제27조는 국민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한다. 이 권리는 국가가 공정한 재판제도를 운영할 때 실현된다. 차병직 변호사 등의 헌법 주석서 '지금 다시 헌법'은 재판 공정성의 핵심을 '예측가능성'에 둔다. 사건이 어떤 절차와 원칙으로, 어느 시점에 결론이 날지 알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특검 사건은 국가적 관심사이고, 그 무게 또한 결코 가볍지 않다. 하지만 그 이면의 수많은 민생 형사사건 역시 같은 법정의 시간 안에 놓여 있다.
재판의 속도와 관심도의 무게가 한쪽으로 쏠리지 않길 바란다.

scottchoi15@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