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자민당 총재선거부터 10일 자민당·공명당 연립정권 붕괴에 이르기까지 일본 정치권에서는 그 어떤 사건도 예상범위 안에 있지 않았다. 총재선거 초기까지만 해도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상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 후보로 꼽혔다.
온라인 예측 플랫폼 '폴리마켓'에서도 고이즈미의 승리 확률을 약 70%로 예상했다. 다카이치는 10%대 초반에 불과했다. 그러나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가 당원 표를 싹쓸이하자 자민당 내 유일하게 파벌을 이끄는 아소 다로 전 총리가 아소파 의원 43명에게 "결선에서는 다카이치에게 투표하라"고 지시하며 판을 뒤집었다. 결과는 '다카이치의 깜짝 승리'였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자민당·공명당 연정이 붕괴했다. 일본 정치권에서는 "수십년 만에 처음 보는 일"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총리지명 선거를 위한 임시국회는 당초 15일로 예정돼 있었지만 21일, 24일 등 여러 설이 오가며 일정조차 확정되지 못하고 있다. 외교가에서도 "이제는 예측하는 게 의미가 없다"며 허탈함을 감추지 못한다.
사태의 배경에는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킹메이커'로 부상한 아소 전 총리가 보수층 결집을 위해 다카이치를 밀어올렸다는 해석, 반대로 다카이치가 여소야대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국민민주당과 연대를 시도하면서 공명당의 반발을 샀다는 분석도 있다. 여기에 13년 만의 정권교체를 노리는 제1 야당 입헌민주당이 야권 단일화를 추진하며 정국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총리 인선과 내각구성 지연으로 외교·경제 일정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오는 26~28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아세안(ASEAN) 정상회의, 31일 한국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그리고 28일 전후로 예상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일 일정까지 모두 불투명하다.
이번 정국 혼란의 가장 큰 피해자는 일본 국민이다. 이번 선거에서 국민이 가장 크게 바랐던 것은 정치공방이 아닌 생활안정이었다. 일본의 실질임금은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 중 단 두 해를 제외하고 매년 하락했다. 2023년에는 2.5% 줄어들었고, 올해는 그보다 더 나쁘다. 정부가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대기업들이 급여를 높여도 고물가가 상승폭을 잠식하고 있다.
자민당 총재선거 이후 일본 국민들은 "물가대책과 감세정책, 외국인 노동정책 등 현실적인 민생 해법이 우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지만, 정국 혼란 속에서 이 같은 과제는 뒷전으로 밀렸다. 실제로 야후재팬이 총재선거 당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35.2%가 '경제정책 추진'을 신임 총재에게 가장 기대하는 과제로 꼽았다. 댓글 대부분이 "세금이 너무 무겁다" "재무성 개혁이 필요하다" "경제를 성장궤도로 돌려 달라"는 호소였다.
하지만 내각 출범이 이달 21일 이후로 미뤄질 경우 물가대책을 포함한 2025년도 보충 예산안의 연내 성립은 사실상 어렵다. 이는 경제 불확실성을 키우고 국민 체감경기에도 직접적 타격을 줄 수 있다.
지금 일본은 정치적 리더십 부재와 국민의 피로감이 정면으로 맞부딪치는 국면에 있다. 예측 불가능한 정치는 흥미롭지만 예측 불가능한 경제는 위험하다. 가까스로 탄생하는 일본의 새 정권 역시 외교 불확실성과 경제불안 속에서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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