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경제

유럽 덮친 연금·정년 리스크…佛 총리는 양보, 벨기에 노조는 총파업

홍채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0.15 10:14

수정 2025.10.15 10:14

佛 총리, 들끓는 포퓰리즘·정국 불안에 무릎 꿇고 마크롱 역점 사업 양보
"2028년 1월까지 정년연장 안 해"
한편 벨기에선 '긴축재정 반대' 총파업 진행 중
벨기에 노조 "시민들을 진짜 움직이게 만드는 건 연금 문제"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프랑스 총리.AP뉴시스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프랑스 총리.AP뉴시스
[파이낸셜뉴스] 프랑스와 벨기에가 같은 날 연금개혁을 둘러싸고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프랑스 정부는 정치적 불안을 수습하기 위해 정년연장 계획을 유예했고, 벨기에 노동계는 정부가 추진 중인 긴축정책과 연금개혁에 반대하며 총파업으로 맞섰다. 유럽 곳곳에서 불붙은 '연금 리스크'가 각국의 정치·재정 불안 요인으로 확산 중인 분위기다.

14일(현지시간) 프랑스 AFP통신·영국 BBC 등에 따르면,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프랑스 총리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역점 사업으로 추진해온 연금개혁 중단을 제안했다. 그는 이날 정책 연설에서 "2023년의 연금개혁을 다음 대선 이후로 연기할 것을 의회에 제안하겠다"며 "현재부터 2028년 1월까지 정년연장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 대선은 2027년 4∼5월로 예정돼있다.

이 같은 제안은 르코르뉘 총리가 임명 27일 만에 사임했다가 나흘 만에 재임명됐을 만큼 극심한 프랑스의 정치적 불안정을 타개하기 위한 '양보 카드'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마크롱 대통령도 르코르뉘 총리 재임명 후 본인의 대선 핵심 공약이었던 연금개혁을 연기할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마크롱 대통령이 야당과 여론의 거센 반발에도 2023년 9월 시행을 시작한 연금개혁은 연금 수령을 시작하는 퇴직 연령을 기존 62세에서 매년 3개월씩 늘려 2030년 64세가 되도록 하고, 연금을 100% 받기 위해 납입해야 하는 기간도 2027년부터 43년으로 1년 늘리는 걸 골자로 한다.

아울러, 르코르뉘 총리는 이날 "연금개혁 중단에 따른 비용이 2026년 4억유로(약 6630억원), 2027년 18억유로(약 2조9860억원)로 추정된다"며 "다른 곳에서 아껴야 한다"고도 밝혔다. 이에 주요 외신도 "국내총생산(GDP)의 5.8%에 달하는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긴축 예산안을 의회에서 통과시켜야 하는 최대 난관이 남아 있다"고 거들었다. 프랑스의 공공 부채는 GDP의 114% 수준으로, 유로존(유로 사용 20개국)에서 그리스와 이탈리아 다음으로 높기 때문이다.

이번 카드가 프랑스 야권에 얼마나 통할지는 불분명하다. 애초에 극우부터 극좌까지 야당들은 조기 총선을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이날 연금개혁 중단 발표에도 사회당 중진 보리스 발로 의원은 "당신의 말이 행동으로 바뀔지 지켜보겠다"며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한편, 같은 날 벨기에에선 노동단체들이 정부의 연금개혁과 긴축정책에 항의하며 총파업에 돌입했다. 이날 프랑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수도 브뤼셀 북역과 남역 사이에서 열린 집회에 경찰 추산 약 8만명이 참가해 '65살에 연금 받을 권리' 등 문구를 적은 팻말을 들고 정부의 정년연장 방안을 규탄했다. 조합원 약 150만명을 보유한 벨기에노조총연맹(FGTB)의 티에리 보드송 위원장은 "시민들을 진짜 움직이게 만드는 건 연금 문제"라고 말했다.

프랑스 정부와 유사하게도, 벨기에 정부는 법정 은퇴 연령을 현재 65세에서 2030년 67세까지 단계적으로 올리고 공무원 조기 퇴직을 제한하는 등 연금개혁을 중심으로 긴축재정을 추진 중이다. 벨기에의 올해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 예상치는 약 5.5%로,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 루마니아·폴란드·프랑스에 이어 네 번째로 높기 때문이다.
여기에 올해 기준 GDP의 약 1.5%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최저 수준인 국방비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요구대로 5%까지 끌어올려야 해 벨기에 정부는 더욱 진퇴양난에 놓일 것으로 전망된다.

whywani@fnnews.com 홍채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