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세계 최고의 IT국가 한국민들은 2년만에 다시 행정서비스 불통 사태를 겪게 됐다. 2년 전 사고 당시 정부는 시스템 이중화, 재해복구시스템 구축 같은 개선을 약속했지만, 개선하지 않았던 것이 드러났다.
감사원이 요구한 근본적 개선은 예산 절감과 책임 회피로 얼룩진 행정 현실이다. 국정자원은 국가 핵심 데이터가 모이는 ‘디지털 금고’지만, 디지털은 모르는 일반행정의 틀에서 재단됐다. 사업은 예산에 따라 쪼개지고, 조달은 최저가 입찰로 진행되며, 시스템의 안정성과 확장성은 늘 '다음 단계에서 검토'로 미뤄진다.
네트워크 사고 이후 국정자원은 백업 강화를 외쳤지만, 정작 백업 시스템 예산은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 심사에서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삭감됐다. IT를 전공하지 않은 예산 담당자들은 "3중 백업은 과도하다"고 일축했다. 현장을 모르는 탁상행정이 기술보다 위험하다는 경고는 수없이 나왔지만, 정부의 예산 시스템은 여전히 사업의 특성이나 중요성에 대한 논리가 아니라 기준표로 작동한다. 기술과 위험을 숫자로만 재단하는 행정이 결국 배터리 불씨 하나에 전국민 행정서비스 중단이라는 재난을 불러왔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공공 IT사업의 구조적 병폐다. 정부 전산사업의 80% 이상이 여전히 최저가 입찰제로 발주된다. 이번 국정자원 화재사고의 원인이었던 배터리 이전작업을 경험없는 업체에 맡긴 것으로 드러난 것은 최저가 입찰제의 현실이다. 정부의 한 공무원은 "국정자원 실무자가 배터리 이전 작업을 경험 많은 비싼 업체에 맡기겠다고 기안했다면, 된통 혼만 났을 것"이라고 현실을 설명했다. 기술력이 아니라 단가 경쟁이 정부사업의 핵심이라는 것은 공무원도 기업도 다 안다. 개발사는 품질보다 납기를, 유지보수 회사는 안정성보다 비용 절감을 택한다. 그 결과 시스템은 패치를 덕지덕지 쌓는 것으로 겨우 유지된다. 국정자원 화재 이후 수많은 정부 시스템들이 원본 아키텍처를 확보하지 못해 복구가 늦어지고 있다. 시스템 설계와 시공, 유지보수 업체가 모두 다르고, 발주처조차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지 불분명한 상황에서 시스템의 원본 아키텍처를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현장의 하소연이 속속 나온다. 예산은 매년 감액되고, 사업자는 단기계약으로 교체되며, 기술 인력은 외주에 의존한다.
이것이 디지털정부를 넘어 AI정부를 만들겠다고 공언하는 2025년 한국 행정서비스의 현주소다. 결국 정작 고장나 있는 것은 시스템이 아니라 정부의 일하는 방식이었던 것 아닌가 싶다.
이제는 진짜 체계를 바꾸는 근본적 개선을 해야 한다. 우선 공공 IT사업의 최저가 입찰제를 폐지하고 기술력 중심의 품질기반 계약제를 적용했으면 한다. 기획재정부의 예산심사는 IT전문 인력이 참여하는 기술검증형 심사 시스템이 도입돼야 한다. 또 국정자원을 특정 정부부처의 부속기관이 아닌 국가 디지털 인프라 총괄기구로 전환했으면 한다. 국정자원 원장을 전산담당 공무원의 마지막 자리 정도로 몰아놓으면 안된다. 디지털 행정서비스의 예산과 인력을 총체적으로 보장해 줘야 한다. 보안, 재난복구 기능을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위상도 갖춰줘야 한다.
정부는 이번에도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대책이 아니라 실질적인 변화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과 제도다. 더 이상 디지털 행정 서비스의 안정성이 값싼 효율성 뒤로 밀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
cafe9@fnnews.com 이구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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