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건강

'항혈전제' 복용하는 황반변성 환자, 실명 위험 2배

강중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0.16 10:02

수정 2025.10.16 10:02

고령층들 복용하는 약물, 실명 위험 높여
불가피하게 복용할 경우 안과·내과 협진
[파이낸셜뉴스] 나이가 들수록 흔히 나타나는 ‘습성 연령관련 황반변성’(이하 황반변성) 환자가 혈액을 묽게 하는 항혈전제(와파린, 아스피린 등)를 복용할 경우, 눈 속에서 심각한 출혈이 발생할 위험이 최대 2배까지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이 같은 연구는 실제 전국 단위 대규모 데이터를 통해 밝혀진 것으로, 고령층에서 황반변성과 심혈관 질환이 함께 나타나는 환자가 늘고 있는 현실에서 매우 중요한 경고 신호로 해석된다.

분당서울대병원 안과 김민석 교수(왼쪽)와 우세준 교수. 분당서울대병원 제공
분당서울대병원 안과 김민석 교수(왼쪽)와 우세준 교수. 분당서울대병원 제공

16일 분당서울대병원에 따르면 안과 우세준·김민석 교수 연구팀은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빅데이터를 분석해 황반변성 환자가 항혈전제를 복용할 경우 수술이 필요할 정도의 ‘중증 안구 내 출혈’ 위험이 평균 1.15배, 약물 종류에 따라 최대 2.3배까지 높아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황반변성은 망막의 중심부(황반)가 손상돼 시야의 중심이 흐릿하게 보이거나 사물이 일그러져 보이는 질환이다. 특히 ‘습성’ 황반변성은 비정상적인 신생혈관이 자라면서 혈액이 새어나와 망막에 출혈과 부종을 일으키는 형태로, 치료하지 않으면 급격한 시력 저하와 영구적인 실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문제는 이 질환이 대개 노화와 함께 심혈관 질환을 동반한다는 점이다. 고혈압, 협심증, 심방세동, 뇌졸중 등의 치료에는 혈액 응고를 막기 위해 항응고제(와파린 등)나 항혈소판제(아스피린 등) 복용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이러한 약물이 오히려 눈 속 출혈을 악화시킬 수 있음을 처음으로 전국 단위에서 확인했다.

연구팀은 2014년부터 2023년까지 40세 이상 습성 황반변성 신규 환자 9만4449명의 자료를 분석했다. 이 중 항혈전제를 복용한 환자군은 복용하지 않은 환자군보다 유리체절제술이 필요한 심각한 안구 내 출혈 발생률이 평균 15% 더 높았다.

약물 종류별로 나누면 그 차이는 더 뚜렷했다. 항응고제 복용 환자의 출혈 위험은 1.9배, 항혈소판제 복용 환자는 1.4배, 두 약물을 함께 복용한 환자는 2.3배까지 위험이 증가했다.

또한 약을 꾸준히 복용할수록 위험이 누적되는 경향을 보였다. 복약 순응도가 높은 환자, 즉 약을 빼먹지 않고 잘 챙겨 먹는 환자의 경우 출혈 위험이 1.69배까지 높았다. 이는 항혈전제의 장기 복용이 눈 속 모세혈관의 출혈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높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연구에서는 남성, 당뇨병을 가진 환자, 비교적 젊은 황반변성 환자에서 출혈 위험이 특히 높게 나타났다.

고령층 환자에게 항혈전제는 필수 약물이다.
우 교수는 “심혈관 질환으로 인해 항혈전제를 끊을 수는 없지만, 황반변성 환자는 반드시 안과와 내과가 협진해 맞춤형 처방과 모니터링을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전국 단위의 빅데이터 분석으로 항혈전제 복용과 황반변성 악화의 연관성을 명확히 규명한 첫 연구다.
연구 결과는 미국의학협회(JAMA)가 발행하는 국제 학술지 ‘JAMA Network Open’에 최근 게재됐다.

vrdw88@fnnews.com 강중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