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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내 피부를 읽을 수 있을까? [전은영의 피부이야기]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0.18 09:00

수정 2025.10.18 09:00

AI 시대에도 중요한 의사의 역할
AI가 내 피부를 읽을 수 있을까? [전은영의 피부이야기]


[파이낸셜뉴스] 최근 AI 기술이 피부과 진료 영역까지 확장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한다.

"AI가 피부를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을까?" 얼마 전 한 20대 환자가 스마트폰 앱으로 자가진단을 한 후 찾아왔다.

"AI가 여드름이라고 했는데 맞나요?"라고 묻더니, 알고 보니 새로 바꾼 화장품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었다. AI는 똑똑한 의대생 같다. 교과서는 다 외웠지만, 환자의 사연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현재 AI 피부 진단 기술은 놀라운 발전을 보여주고 있다. 딥러닝 알고리즘을 통해 수만 장의 피부 이미지를 학습한 AI는 악성 흑색종 같은 피부암을 80% 이상의 정확도로 감별해낸다. 일부 흔한 피부 질환에서는 90% 안팎의 높은 정확도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특히 미용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AI가 질환 진단에서는 뛰어난 성과를 보이지만, 미용 목적의 피부 분석에서는 분류법 자체가 쉽지 않다는 근본적 문제가 있다.

더 복잡한 것은 피부가 시시각각 변한다는 점이다. 같은 사람이라도 생리 주기, 스트레스 수준, 수면 패턴, 계절변화에 따라 피부 상태가 달라진다. 임신이나 폐경 같은 호르몬 환경의 변화는 피부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AI는 현재 상태만 분석할 뿐, 이런 동적 변화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지는 못한다.

21년간의 임상 경험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피부 진료에서 '맥락'이 얼마나 중요한지다. 같은 여드름이라도 10대의 호르몬성 여드름과 30대 직장인의 스트레스성 여드름, 40대 여성의 호르몬 변화로 인한 여드름은 완전히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환자의 직업, 생활 패턴, 가족력, 과거 치료 경험까지 모든 것이 진단과 치료에 영향을 미친다.

안타깝게도 일부 의사들은 이런 맥락보다는 시장 논리에 급급해 메이저 회사의 마케팅에만 의존하기도 한다. 하지만 진정한 의사의 역할은 각 환자에게 맞는 개별화된 솔루션을 찾아주는 것이다. 오랜 경험을 통해 축적된 이런 직감과 판단력은 쉽게 데이터화하거나 알고리즘으로 구현하기 어렵다.

흥미로운 변화가 하나 있다. 예전에는 환자들이 시술 후 "원장님, 집에서 무슨 화장품 써야 좋을까요?"라고 물었다면, 요즘은 "무슨 디바이스 쓸까요?"라고 묻는다. 이런 변화를 외면하거나 "모른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뷰티테크 회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환자들이 궁금해하는 근미래 기술에 가까이 있어야 제대로 된 답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진료 현장에서 중요한 것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이다. 요즘 피부과에는 수십 가지 레이저, 수백 가지 성분, 무수한 시술 옵션들이 존재한다. 마치 거대한 뷔페 같다. AI는 메뉴판을 다 읽어줄 수 있지만, 그 환자에게 지금 당장 가장 필요한 한 접시를 고르는 것은 현장의 의사만이 할 수 있다.

그렇다면 AI 시대에 의사의 역할은 무엇일까?
먼저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큐레이터' 역할이다. AI가 제공하는 객관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환자 개인에게 최적화된 치료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다.

둘째, '교육자'와 '상담자' 역할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감과 소통' 능력이다. 피부 문제로 고민하는 환자의 심리적 어려움을 이해하고, 적절한 격려와 조언을 제공하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피부는 자존감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환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의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미래의 피부과 진료는 AI와 의사의 협력 모델로 발전할 것이다. AI는 정확한 진단과 객관적 분석을 담당하고, 의사는 그 결과를 해석해 환자 개인에게 최적화된 치료와 상담을 제공하는 것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인간만이 가진 직관과 공감 능력의 가치가 더욱 빛날 것이다.

결국 AI는 의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진료를 위한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기술의 한계를 인정하고, 인간의 고유한 역할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전은영 닥터은빛의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