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탄소중립 정책이 이 전철을 밟을 우려가 있다.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은 2024년 기준으로 6억9000만t으로 2018년(7억5000만t) 대비 약 7.6%를 줄였을 뿐이다. 그나마 2022년 이후 원전 비중 확대로 이루어진 감축이다.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으로 대폭 상향된 NDC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를 의심하는 이유다. 예를 들어 2040년 80% 감축목표를 달성하려면 단 15년 만에 재생에너지 용량을 현재 37GW에서 약 200GW로 6배가량 확대해야 한다. 국토 내 적지는 빠르게 고갈되고,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보완 설비에 필요한 천문학적 비용 등을 고려할 때, 금수강산 방방곡곡을 누더기 깁듯 뒤덮을 태양광 패널이 중국 대약진 시대의 토법고로의 신세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그나마 재생에너지라도 선택할 수 있는 발전 부분은 사정이 조금 낫다. 고온의 열에너지를 주로 사용하는 산업 부문은 화석에너지를 대체할 마땅한 방법이 없이 전전긍긍이다. 특히 산업 부문 배출량의 40%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철강 산업은 더욱 앞이 깜깜하다. 궁극적 해결책인 수소환원제철은 값싸고 안정적인 수소 공급이 여전히 걸림돌이어서 이른 시일 내 상용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고철을 녹이는 전기로 비중을 높이는 미봉책으로 대응하고 있는 정도다. 목표 달성에 집착해 식기마저 녹여 사용했던 현대판 토법고로를 보는 것 같다. 현실적 대안이 없지는 않다. 조기 폐로가 결정된 월성1호기를 수소 생산 전용으로 재가동하고, 제철소 주변 원전에서 생산된 전기를 직접 구매할 수 있는 전력구매계약(PPA)을 허용하는 방법이 있다. 미국은 원전을 80년 이상 가동하고, 원전과 빅테크 기업 간 PPA가 속속 성사되고 있다. 우리의 사정이 40년 사용한 멀쩡한 원전을 폐로하고, 재생에너지에만 PPA를 허용할 만큼 여유롭지 않다.
실현 가능성이 낮은 목표 설정은 행동 변화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목표 미달로 끝나기 쉽다. 중국의'낮은 목표, 높은 성취'전략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NDC 목표는 실현 가능한 수준으로 잡는 동시에 기업의 탄소 감축 역량을 키우는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목표의 초과 달성을 유도함으로써, 성실한 친환경 국가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전략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NDC 목표의 상향 조정에만 열중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자칫 '높은 목표, 낮은 성취'로 훗날 불량한 반환경 국가로 낙인찍혀 국가적 체면만 구길 우려가 있다. 진영 논리에 치우쳐 설정된 비현실적 NDC 목표는 결코 실용주의를 표방하는 이재명 정부와 어울리지 않는다.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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