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웬치' 3번 다녀온 남성, 경찰에 자수
'고소득 일자리' 속는 사람보다 생활 어려운 사람 노린다
소액 빌려주고 신뢰 쌓아 "잠시 통장만 빌려달라" 유인
'고소득 일자리' 속는 사람보다 생활 어려운 사람 노린다
소액 빌려주고 신뢰 쌓아 "잠시 통장만 빌려달라" 유인
[파이낸셜뉴스] “저는 운이 좋아 계속해서 빠져나왔지만, 그곳에 갇혀 있는 한국인들이 어서 구조되길 바랍니다.”
캄보디아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납치·감금 사건이 잇따르는 가운데, 현지 범죄 조직에 금품을 받고 통장을 빌려준 50대 남성이 경찰에 자수했다. 이 남성은 통장을 빌려주면 1000만원이 넘는 보수를 지급하겠다는 말에 속아 캄보디아에 세 차례 다녀온 것으로 알려졌다.
16일 부산 해운대경찰서는 사기 방조 등의 혐의로 50대 남성 A씨를 입건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신용불량자이자 기초생활수급자로 어렵게 생활하던 A씨는 텔레그램에서 "사업자금으로 쓸 통장을 빌려주면 1000만원 이상을 주겠다"는 대포통장 모집책 ‘장집’의 제안을 받아 이를 수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직접 캄보디아로 가서 통장과 여권, OTP(일회용 비밀번호 생성기)를 조직원인 조선족에게 건넸고 이어 범죄집단 밀집 지역인 '웬치'로 끌려갔다. 당시 그의 통장에는 범죄자금 3500만원이 입금됐지만 중간에 지급정지가 되면서 1200만원이 출금되지 못했고, A씨가 조직원들에 보수를 강력히 요구하자 돌려보내 줬다.
A씨는 이와 관련해 A씨는 "제 몸에 문신도 있고 험상궂게 구니 겨우 보내줬다"며 "일반인이었다면 절대 못 빠져나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자신이 비교적 덜 잔혹한 '웬치'에 갔기에 탈출할 수 있었다며 "웬치, 총책마다 한국인을 대하는 태도가 모두 제각각이고 가장 심한 곳은 (출입 확인 용도의) 촬영이 필요 없을 만큼 탈출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A씨는 "보이스피싱 문제가 잘 알려져 고소득 일자리라는 말에 속아 캄보디아에 넘어가는 사람은 드물다"며 "대신 생활이 어려운 사람을 표적으로 삼아 50∼100만원을 빌려주고 신뢰를 쌓은 뒤 '잠시 통장만 빌려달라'며 유인한다"고 설명했다.
A씨에 따르면 현지에서 자금세탁 과정 중 자금이 빠져나가거나 지급정지가 걸리는 이른바 '돈 사고'가 발생할 경우, 출금하지 못한 금액만큼 한국인에게 빚이 생기는 구조다. A씨는 "조직원들이 돈을 빌려 카지노를 해보라고 권하는데, 결국 그 모든 것이 빚으로 남는다"며 "여기에 계좌가 동결돼 출금하지 못한 금액까지 합치면 수천만 원의 빚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약속했던 보수를 달라고 조직원을 계속 압박하던 A씨는 돈을 주겠다는 말에 캄보디아를 두 차례 더 방문했으며, 자신의 통장이 범죄에 이용된 사실을 알고 경찰에 자수한 상태다.
A씨는 현재 대중에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은 피해자와 범죄 단지가 현지에 있다며 "웬치에 갔을 때 소각장을 실제로 봤는데 정말 많은 한국인이 이미 숨졌을 것 같더라. 저는 운이 좋아 계속해서 빠져나왔지만, 그곳에 갇혀 있는 한국인들이 어서 구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해운대경찰서는 A씨에 대한 기초조사를 마친 뒤, 사건을 부산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에 이관해 수사를 이어갈 예정이다.
bng@fnnews.com 김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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