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의견 표시, 업무방해죄 보호대상인 '업무'로 볼 수 없어"
[파이낸셜뉴스] 재개발추진위원회에 반대하는 의견이 담긴 현수막을 훼손한 위원장의 행위를 업무방해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단순 의견을 표시한 행위는 업무방해죄의 보호대상이 되는 '업무'로 볼 수 없다는 취지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남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개발추진위원회 위원장인 A씨는 지주협의회 회장이 설치한 현수막을 떼어내 지주협의회 입장 홍보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A씨와 지주협의회 회장은 재개발 사업과 관련해 갈등을 빚고 있었는데, 현수막에는 위원회가 추진하는 창립총회에 참석하지 말라는 내용 등이 담겨 있었다.
1·2심의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무죄로 판단했지만, 2심은 유죄를 인정해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에서 판단이 다시 뒤집혔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현수막을 설치해 지주협의회의 입장을 지주들에게 알리는 것은 업무방해죄의 보호대상이 되는 '업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지주협의회 입장 홍보 업무가 방해됐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형법상 업무방해죄의 보호대상이 되는 업무란 직업 또는 사회생활상의 지위에 기해 계속적으로 종사하는 사무나 사업을 말한다"며 "단순한 의사표현의 일환으로서 일회적 또는 일시적으로 현수막 등을 설치해 어떠한 사실이나 의견 등을 알리는 것은 업무방해죄의 보호대상인 업무라고 할 수 없다"고 부연했다.
일회적·일시적인 사무라 하더라도 계속성을 갖는 본래의 업무수행의 일환으로서 행해지는 경우 '업무'로 판단할 수 있다는 점도 짚었다. 이 경우 업무의 종류와 성격, 현수막 설치 시기·장소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대법원은 "주민총회의 원활한 개최, 진행을 저지하거나 방해하려는 의도로 일회적으로 현수막을 통해 지주들에게 주민총회에 불참할 것을 권유하는 입장을 알린 것"이라며 "이를 '직업 또는 사회생활상의 지위에 기하여 계속적으로 종사하는 사무'에 해당한다거나 '지주협의회 회장으로서의 본래의 업무수행과 밀접불가분의 관계에서 이뤄진 사무'라고 평가할 수 없다"고 했다.
다만 재물손괴 부분을 유죄로 판단한 원심에는 잘못이 없다고 판단했다.
jisseo@fnnews.com 서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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