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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의 두 얼굴: 성공의 열쇠인가, 중독의 함정인가? [안철우 교수의 호르몬 백과사전]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1.01 07:00

수정 2025.11.01 07:00

[파이낸셜뉴스] 호르몬은 생명의 진화와 함께 종에서 종으로 전달되고 발전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존재할 화학물질이 있다면 바로 '호르몬'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르몬은 불멸이다. 안철우 교수가 칼럼을 통해 몸속을 지배하는 화학물질인 호르몬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삶을 좀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도파민의 두 얼굴: 성공의 열쇠인가, 중독의 함정인가? [안철우 교수의 호르몬 백과사전]

도파민 분비가 높을수록 성격이 더 긍정적이라는 것을 증명한 실험이 있다.

1994년 코넬대학교의 신경생리학자 리처드 드퓨는 도파민과 성격의 상관관계를 알기 위한 실험을 설계했다.

먼저 그는 10여 명의 지원자를 모집하여 성격 테스트를 실시했다. 그 후 이들의 도파민 분비를 높이기 위해 널리 알려진 리탈린(Ritalin·중추신경계에 흥분을 유도하는 암페타민류 약물)을 투여했다. 이후 이들의 도파민 시스템이 얼마나 활성화되는지를 혈액의 프로락틴 수치와 눈 깜박임 횟수로 측정했다.

도파민이 증가하면 프로락틴 분비가 낮아지고 인체가 흥분상태가 되어 눈을 자주 깜박이게 된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그 결과 성격 테스트에서 긍정적 기질이 강하게 나타난 사람일수록 리탈린에 더 쉽게 반응하고 눈 깜박임이 더 많이 증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신경전달물질이 성격에 관여할 것이라는 과학자들의 추측이 이 실험을 통해 처음으로 증명된 것이다.

도파민이 외향적 성격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 실험도 있다. 2006년 독일 마르부르크 필리프대학교 심리학과 연구팀은 성격이 내향적인 사람들과 외향적인 사람들을 분류한 후 도파민 수용체 길항제(한 약물의 효과를 감소 또는 상쇄시키는 약물)를 투여했다.

그 상태에서 이들에게 엔백(N-back) 게임을 하게 하고 뇌파를 측정했다. 엔백 게임이란 일종의 기억력 테스트로 패턴 없이 나열되는 도형이나 숫자 등을 기억하여 N번째 정보가 제시된 정보와 일치하는지 안 하는지를 맞추는 일종의 뇌 스트레스 게임이다.

실험 결과 외향성이 강한 사람일수록 뇌파가 길항제에 더 강하게 반응하고 엔백 게임의 반응 속도가 느려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길항제에 강하게 반응한다는 것은 도파민 수용체가 많이 존재한다는 것이므로 도파민과 외향성의 상관관계를 어느 정도 증명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도파민은 긍정의 호르몬이자 적극적인 행동의 호르몬이다. 심지어 성공하려면 도파민 분비를 높이라고 주장하는 자기계발 강사들도 있다. 성공한 사람들이 정말로 도파민 분비가 높은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도파민 분비가 높으면 좀 더 외향적이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것은 사실이므로 성공에 도움이 될 거라고 추측할 수는 있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도파민을 20대 청년에게 가장 필요한 호르몬, 도전과 용기의 호르몬이라고 칭하고 싶다. 20대에 뇌의 건강한 도파민 시스템을 잘 발달시키면 더 많은 일에 도전하여 경험을 쌓을 수 있다. 이 경험이 평생의 자산이 되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도파민이 긍정의 호르몬이고 도전과 용기의 호르몬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도파민에는 함정이 있다. 바로 '중독'이다. 앞서 소개한 쥐 실험에서 쥐들이 식음을 전폐하고 보상 버튼을 눌렀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원래 보상 시스템은 생존에 유리한 행동을 강화하기 위해 발달한 것이다. 물, 먹이, 번식, 안전한 보금자리 등,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것들을 확보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쥐들이 굶어 죽어가는데도 먹이를 마다하고 보상 버튼을 눌렀다는 것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죽음을 불사하고 쾌감에 탐닉하는 쥐들. 쥐들은 도파민에 중독된 것이다.

아주 가까운 예로 게임 중독을 들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취미로 즐기지만 사실 게임은 보상 중추를 자극하도록 아주 정교하게 설계된 프로그램이다. 아이템을 획득했을 때의 쾌감, 레벨이 올라갔을 때의 희열은 도파민 분비를 마구 자극한다.

그만큼 게임은 중독되기 쉽다. 게임에 심하게 중독된 사람들은 생활을 내팽개친다.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않고 게임만 한다. 심지어 게임을 하느라 아이를 방치하여 굶겨 죽인 엄마가 뉴스에 보도된 적이 있다.

음식 중독, 알코올 중독, 약물 중독, 도박 중독, SNS 중독, 스마트폰 중독 등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원리는 똑같다. 원래 보상은 노력해서 어렵게 쟁취해야 하는 것인데 이런 것들은 단지 먹고 마시는 것으로써, 혹은 키보드를 두드리고 마우스를 클릭하는 것으로써 너무나 쉽게 보상의 쾌감을 선사한다. 사회에 나가 경쟁자들과 싸워 이겨야 할 필요도 없고 노력해야 할 필요도 없으니 이 쉬운 보상에 많은 사람들이 탐닉하게 된다.

따라서 도파민은 양날에 칼이 있는 위험한 호르몬이다. 긍정적으로 작용하면 적극적인 행동, 성취, 성공으로 향하지만 부정적으로 작용하면 쾌락 추구, 탐닉, 중독으로 향한다.
20대의 매우 예민한 시기, 자칫 잘못하면 자신도 모르게 부정적인 방향으로 보상 시스템을 키울 수 있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도파민의 두 얼굴: 성공의 열쇠인가, 중독의 함정인가? [안철우 교수의 호르몬 백과사전]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